사람들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개 몇 가지로 좁힐 수 있다. 연봉의 불만족, 숨 막히는 출퇴근길과 오버타임이 연속인 근무환경, 혹은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인간관계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들은 타인에게 설명하기 쉽고,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용인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퇴사의 이유는 이보다 훨씬 모호하며, 동시에 훨씬 근원적이었다.
보통 우리는 조직의 부품이 되기를 자처한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 작은 나사 하나가 필요하듯, 나의 노동이 전체의 성과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없어도 이 기계는 아무런 마찰음 없이 너무나 완벽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자리에 누가 앉아도, 심지어 그 자리가 비어 있어도 조직의 생리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을 때,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위기를 겪는다. 내가 쏟는 시간과 열정이 고유한 기여가 아니라 대체 가능한 소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이러한 무가치함을 오랫동안 느끼게 된다면 나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 내가 할 일이 세상에 어떤 작은 균열도 내지 못할 것임을 예감할 때, 무기력은 머리를 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생각을 극복하고자 나는 월급을 생각하고, 대출금을 생각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 날 응원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이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조직에서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부차적인 가치는 큰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근원적인 물음이 끝에 닿는 순간 퇴사를 선택했던 것 같다. 다른 조건들이 좋아도 내가 무가치한 사람으로 이 조직에 남게 된다면 주저 없이 박차고 나왔다. 다만 나이가 들고, 지킬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현실과 타협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냥 다니자. 그냥 다니자. 그래서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라 인정하고 계속 한 직장에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