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있다면

by 샤토디

어릴 적 나의 소원은 늘 구체적이고 거창했다. 생일 케이크 촛불 앞에서, 혹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인공위성을 별똥별이라 착각하며 빌었던 소원들은 대개 초능력을 갖게 해달라거나, 어른이 되어 멋진 차를 몰고 싶다거나 하는, 지금 생각하면 다소 유치하지만 찬란했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나의 간절함에 반드시 대답할 거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안의 소원 저장고는 텅 비어버렸다. 12월 31일 저녁에도 여느 때와 같이 TV를 보다가 잠들며 여느 때와 같이 1월 1일의 아침을 맞이한다. 해돋이 앞에서도,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 소리 옆에서도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딱히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삶이 완벽하게 만족스러워서 무소유의 경지에 이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리라는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왜일까?


첫째로 예측 가능한 절망에 익숙해졌다. 소원을 빈다는 것은 기대한다는 뜻이고, 기대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실망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뜻이다. 몇 번의 좌절과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겪으며 내 마음은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바라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는 매우 단순한 원리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소원이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계산과 합리적인 포기만이 남았다.


또한 소원의 질적인 변화에 기인한다. 예전에는 더 높은 곳을 꿈꿨다면 이제는 그저 지금만큼만을 유지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큰 행운을 바라기보다 큰 불행이 비껴가기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생존자가 된 셈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부모님의 건강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소원이라기보단 유지보수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한편 이따금 이곳에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세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 그 동력이 식어버린 느낌을 받을 때면 서글픔이 밀려온다. 잘 쓰고 싶다는 소원조차 없다는 것은 꿈이 없다는 의미이고, 꿈이 없다는 것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텅 빈 마음을 글로 옮기다 보니 아주 작은 바람 하나가 고개를 든다. 거창한 기적이나 화려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오늘 쓴 이 글 하나가 누군가의 굳은 마음을 살짝 건드릴 수 있기를. 그저 세상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렇다'라는 무덤덤한 위로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수요일 연재
이전 02화퇴사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