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프링피버에서 한 변호사가 학생들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네 편이 되어줄게'
내 편이 되어준다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혼자가 좋다고 하더라도 내 편이 한 명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보다 더 든든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 편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만 가능하다. 평소에 아무리 내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막상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등을 돌리는 일은 부지기수다. 우물에 빠진 나를 구하기 위해 내 손을 잡았다가는 같이 우물에 빠질까 봐.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난 네 편이야 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을 내가 어려울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선 절대 안 된다. 나의 환경이 크게 치우치지 않을 때 나의 선택에 한 표를 던져줄 수 있다 정도로만 생각해야 한다. 예의 변호사가 네 편이 되어준다고 하는 것도 수임료를 받았을 때 이야기지, 법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상 모든 어중이떠중이에게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네 편이 되어준다는 말이 공허하고 덧없게 느껴진다. 말만 들으면 천군 마마를 얻은 것 같지만 실제로 나의 상황과 내 편이 되어준다는 상대의 여건도 썩 나쁘지 않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편이 되어준다는 말은 어떠한 격려의 말 보다 훨씬 따뜻하다. 네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힘냈으면 좋겠다. 등등 나의 안녕을 바라는 말은 많지만 이를 염원하는 사람의 행동은 정적일 뿐이다. 반면 내 편이 되어준다는 말은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내가 크게 기대를 거는 우를 범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가장 따뜻하게 다가올 말 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에게 네 편이 되어준다고 말한다면, 그 말에 너무 많은 것을 싣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흘려보내지도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저 당신 곁에 머물겠다는 작은 의지의 표현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세상에 완전한 편은 없지만, 그 불완전한 한마디가 때로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