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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by 샤토디

영어를 잘하는 그가 말했다.


- 너는 영어로 말할 땐 샤이보이가 되는 것 같아.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샤이보이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말해.


그런데 나는 영어를 몰라서, 정확히는 영어로 말하는 법을 잘 몰라서 머뭇거리는 것일 뿐, 부끄러움을 딱히 느끼진 않는다.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 일단 너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어봐.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의 페르소나를 만들라는 뜻인가? 그게 '영어 못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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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중학생들의 엄청난 자아도취적 표출성향을 간결히 표현한 말이다.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이 '병'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청소년을 희화화하는 말로 일본 개그프로그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의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부끄러질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인물(대부분 연예인)을 흉내 낸다든지, 노래를 따라 부른다든지, 혹은 같이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침대에서 허우적대다가 엄마가 문을 벌컥 열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래서 소리를 꽥 지를 때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명백히 HOT의 여섯 번째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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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소리가 저음이고 말소리가 작아서 항상 '너는 무슨 이야기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왔다. 각종 면접을 준비하며 소위 '달변가'들은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궁금했다. 또한 그들의 능력은 선천적인지 혹은 후천적인지, 후천적이라면 나도 달변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당시 달변가로 가장 핫했던 강사 S의 과거 영상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는 그분도 말투가 매우 어눌했다. 이분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나. 나는 그날부터 강사 S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면접이 끝나고 다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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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꼭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영어를 못해도 무작정 들이대는 캐릭터라면 절반은 성공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나에게 지금 부족한 부분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얼마 뒤 만난 그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조이서(김다미 배우)를 자기의 페르소나로 차용할 거라 했다. 흔들림 없이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집에 와서 나도 곰곰이 생각했다. 아 그럼 나는 박새로이 할래. 박새로이라면 영어도 잘할 것 같고. 조이서 못지않게 당당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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