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고 악한 사람은 반드시 나쁜 사람이어야 할까?
곰곰 생각해 보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어느샌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각각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분류해 버린다.
나에게 커피 한 잔을 사준 김 차장님은 선한 사람이고, 내 밤샘 작업물을 앗아간 박 대리는 악한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흔한 속성들이 무수히 들러붙는다. 그, 덕에 김 차장은 커피 한잔 덕에 사려 깊고 이해심 많으며 자애롭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박 대리는 나의 밤샘 작업물을 앗아갔기에 탐욕스럽고 고집 세며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이 된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질까? 그렇지 않음에도 말이다. 왜일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쉽게 단정 짓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일회적인 호의와 무례를 바탕으로 느꼈던 첫 이미지가 선인 또는 악인의 분류 안에 있는 특정 속성과 일치한다면 본능적으로 그 분류 속의 전체 속성을 씌워버린다. 사람에겐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는 그렇게 단편적으로 선악을 나누진 않는다'라고 할지언정,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가 평생 형성해 온 선과 악의 카테고리의 경계는 견고하고 그 안의 속성들끼리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게 진짜 선과 악인가 하는 문제다. 그저 좋은 (것 같은) 수식어는 선한 사람의 속성, 나쁜 수식어는 악한 사람의 속성이라고 우리 멋대로 분류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뭔데?라고 물었을 때 명확히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살아오며 나와 갈등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돌이켜 보았다. 내가 그중 다수는 내가 악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은 사람들이었으며 그렇게 생각하게 된 단편적인 사건들을 하나씩 떠올릴 수 있었다.
한 명은 고등학교 동급생 P로, 어느 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나에게 마주칠 때마다 욕설을 서슴지 않은 아이였다. 나는 P를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어댔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과 갈등 관계에 놓였으며 우리는 P를 두고 정말 악한 놈이라고 못을 박았다.
P의 돌변한 태도 이면에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나와 친했다고 생각했던 나머지 나에게 조금 짓궂은 장난을 쳤는데, 그것은 바로 나를 좋아한다는 여자아이로 가장하여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이성적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그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나의 사생활도 하나씩 공유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그 P가 나를 힘들게 한다, 그 P가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거짓말을 하고 물건을 뺏기도 한다며 나의 속마음을 이메일에 담았다. 아뿔싸 그런데 그 돌아온 답장에는 정체를 드러낸 그 P의 온갖 울분이 담겨 있었다.
P에겐 내가 배신자가 아니었을까? 믿었던 친구, 친했던 친구에게 약간의 장난을 쳤을 뿐인데, 나를 이렇게 까지 험담할 줄이야. P에겐 내가 악인이었을까?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살다 보니 점점 명확해지는 것은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뭔지 더더욱 모르겠다는 것. 선해 보이는 행동과 악해 보이는 행동은 그저 내 상황에 따라 느껴지는 매우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