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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by 샤토디

퇴직 후 며칠이 지나 퇴직금이 통장에 입금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거액의 돈이라 눈이 휘둥그레 커졌고, 이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까 고민했다. 평소에 별로 관심이 없던 재테크 정보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고, 답은 연금계좌와 미국주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대 초에 장학금 명목으로 받은 이백만 원을 굴리다가 대부분 잃고 다시는 주식을 안 하겠다 다짐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이미 싹 지워졌다. 이미 내 머릿속엔 1년 후 1억 3년 후 10억! 이러한 또렷한 청사진이 아른거렸다. 증권 앱을 다운로드하고 계좌를 개설했다. 매수버튼을 클릭했다. 몇 번 출렁대더니 금세 파랑 물결로 가득했고 매수 첫날 나는 우울했다.


어차피 바닥에서 사서 머리에서 파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면 최고다라고 생각을 했다. 스스로 생각해서 투자한 종목마다 파랑 물결을 맞이했고 나의 똥촉은 왜 항상 이럴 때만 발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왜 나에겐 그마저도 없는 걸까? 돈을 벌었다고 계좌를 인증하는 사람들은 지구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어쩌다가 빨강 신호가 떠서 매도버튼을 눌렀을 때 나 스스로 투자의 귀재라 생각했다. 하하 돈 버는 게 이렇게 쉬울 줄이야. 그런데 무릎에서 사서 허벅지에서 팔았다는 바보가 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땐 나 스스로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하루만 더 참지 왜 그랬어.


결국 나는 발 끝에서 사서 머리끝에서 팔지 않으면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막힌 타이밍은 시간여행자 또는 신만이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건방지게 나도 살짝 그 틈에 끼고 싶었다.


어느 날 한참 잊고 지내던 연금 계좌를 열어보았다.


수개월동안 지지고 볶았던 주식투자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았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유명 유튜버가 추천해 준 연금계좌 종목과 똑같이 투자했다면 이렇게 까지 허무하진 않을 것 같은데.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이 사라는 것 똑같이 사는 사람을 바보라 생각했지만, 나는 그들보다 훨씬 바보였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주식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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