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아

by 천둥

그녀 t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엄마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하지만 엄마 이야기는 좀 더 미루고 싶다.


t는 그때 폐암 말기를 선고받았다. 시골에 땅을 사서 자급자족을 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가 드디어 시골에 집을 짓고난 직후였다. 아직 서울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주말에만 시골집에 다니러 왔다 갔다 하면서 그녀는 무척 행복해했다. 어느 날 옆구리가 몹시 아파서 동네 병원에 갔다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집으로 들어갔다. 의학적 조치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을 그녀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땅을 제대로 만들려면 최소 3년은 걸릴 테니, 땅을 만들 때까지만 몸이 버텨주면 좋겠다면서 그녀는 땅 만들기에 돌입했다. 그때가 초여름이었다. 그녀는 올해 농사가 아주 늦은 건 아니라며, 매일 땅을 기어 다녔다. 고랑을 만들고 돌을 고르고 잡초를 뽑았다. 저녁이면 페이스북에 밭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려 하루치의 행복을 쌓아갔다.

3년 차 밭을 갈고는 그만두었다. 나는 더 하라고 보챘다. 땅 위에 있었기에 생각보다 긴 시간을 버텼던 거니까.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더 이상 땅을 그러잡을 수 없음을.

그녀는 땅을 만들면서 매일 요리를 했다. 요리하기를 좋아했지만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 그녀가 요리를 하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맞는 먹거리를 알뜰히 챙겨 먹을 수 있고, 딸들에게 원 없이 맛있는 걸 제 손으로 해먹이며 원을 풀 수 있으니까. 그녀의 꿈은 아이들을 제 손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남들은 친정 엄마 덕에 살림과 육아 걱정 없이 회사에 다닌다고 하지만, 사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것은 살림과 육아였다. 그녀의 엄마는 수시로 갑작스레 집을 나가버려서 안정적인 육아를 보장받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오면 경제적인 손실도 따라왔다. 밖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녀는 이후의 엄마 거처를 걱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그대로 주저앉아 남편에게 부담을 줄까 봐 걱정한 것이다.


그녀와 나는 너무 멀리 살았다. 자주 긴 통화를 했다. 주로 엄마 이야기였다. 엄마가 있지만 ‘엄마’ 품을 느껴보지 못한 엄마의 부재에 대해, 엄마가 없어서 엄마품을 그리워할 딸들에 대해, 딸들에게 그동안 엄마품이 되어줬는지에 대해, 또는 딸들에게 엄마의 부재가 숙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두려움에 대해. 우리에게 엄마는 삶 이전에 넘어야 할 산이었고, 죽음 이전에 건너야 할 강이었다. 엄마의 부재는 언제나 관계의 불안을 낳았다.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섰다. 불안을 남편에게서 해소해보려고 했다. 도움은 되었지만 자기 안의 부재라는 건 누군가 옆에 기댄다고 해서 메워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녀는 그만하면 됐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맞서 싸울 죽음이 아니라 마무리할 죽음에 대해. 살아오면서 늘 곁을 서성이던 죽음에 대해, 이 죽음 뒤에 아무것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해, 그래서 죽음을 앞두고 삶을 함께 해준 사람들과 어떻게 헤어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이야기 안에는 항상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삶을 응시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죽음을 향해 살지 않고 삶을 향해 내밀하게 살아냈다. 죽음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모든 과정이 자신이 살아온 삶과 일관성있기를 바라고 죽음까지를 하나의 완성으로 마무리하려고 애썼다. 평생 기획자로서 살아온 그녀답게 자신의 장례식까지도 기획을 해놓을 정도로.


그녀가 아직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을 때, 그녀는 혼자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당시의 그녀를 기억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기억하는 그녀에 대해 들으면서 그녀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알았다. 그녀는 만족스러웠다. 그녀의 삶이. 그녀가 남긴 흔적이. 남겨질 기억이. 그녀는 그 여행으로 죽음에 대한, 또는 삶에 대한 마무리도 끝냈다. 엄마에 대해서도 이미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것이 화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가벼워졌다.

그때부터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살면서 미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 남았다고 했다. 그동안 그녀의 투병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주었고 그녀에게 뭐라도 도움을 주려고 애써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기쁘게 받았다. 그런 일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스스로에 대한 증명이기에.


그녀가 땅을 기어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죽음은 성큼성큼 다가왔다. 선명해지는 죽음에도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번도 내 뜻대로 산 적이 없다고 하다가 그것 또한 자신의 뜻이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죽음을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애써 미루려고 하지는 않았다. 만일 그녀가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고자 했다면 이유는 오직 하나, 딸들이 조금이라도 더 크기를 바랐고, 이별할 수 있도록 많이 부딪히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딸의 간병으로 마지막 시간들을 보냈다. 그토록 바라던 살가움을 딸들과 나누었고 더불어 지긋지긋함도 나누었다. 이제 충분하다고 여겨질 무렵 그녀는 떠났다...


그녀가 가기 일주일 전, 그녀를 만났다. 고통 속에 있는 그녀를 지켜보다가, 그마저도 괴로워 일어서려던 때, 선망 속을 헤매던 그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냥 누워있으라는 내 손을 잡고 아니야.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 정도는 해야지."

그 말은 그녀가 살아온 태도, 그 자체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었다. 살아오면서 내내. 가면서도 기어이 그 말을 하고 갔다. 그녀는 그랬다. 누군가에게 항상 이 정도는 해야지, 라며 자신의 일을 기어코 했다.

죽음을 맞이하기에 조금 이르지 않냐는 그녀의 말에 너무 늦는 것보다 나아,라고 대답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온전히 받아들였다. 서리가 내리도록 차가운 말이었지만 그것이 가장 따뜻한 마음이었음을 알아주었다. 삶이 버거워서 죽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면서. 그토록 반가이, 그토록 아쉽게 가는 죽음이라니. 그토록 단정한 죽음이라니.

지금은 후회한다. 그녀에게 한말을. 죽음에 너무 늦는다는 건 없다. 삶은 언제나 부족하다. 삶은 아무것도 못할 때에도 귀하다. 나도 그때는 몰랐다.


봄이 되면 사위를 위해 도다리쑥국을 끓여달라고, 자신을 위해 그것만 해주면 된다고 그녀는 엄마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엄마가 그건 해줄 거라던 그녀는 어디까지 엄마라는 산을 넘었을까. 애초에 그런 게 가능이나 할까. 죽음은 그녀에게 엄마에 대한 숙제를 끝내게 해 주었을까. 윤회 같은 거 없이 흙이 되고 싶다던 그녀는 떠나면서 다시 생을 기약했을까. 남은 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가벼워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녀를 보낸 지 수만 년이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겨우 두 번째 봄을 맞이한다. 그녀가 가고, 처음 쑥국을 끓였을 때, 궁금했다. 그녀의 엄마는 사위에게 도다리쑥국을 끓여주었을까. 그녀가 부탁한 대로 도다리쑥국만 끓여주고 갔을까, 예전처럼 도다리쑥국을 핑계로 와서 다른 어려운 일을 내놓았을까. 남은 자들이 알아서 할 몫이다.


t의 부재는 엄마의 부재와 달리, 있었으므로 없어진 것을 알게 해 준 부재다. 이제 나는 그녀가 없는 이곳에서 누구와 엄마 이야기를 할까.

그녀가 가기 전 되뇌었던, 인생에 대해 남은 건 고마움뿐이라던 그녀의 말이 내 안에 스미기를 바란다. 그녀의 죽음은, 슬픈 이별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감사로 남았다. 그녀가 죽음이라는 고독한 시간 앞에서 내게 남기고 싶었을 그 말이 무언지 알 것 같아서, 그녀가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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