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는 몰라도
어떻게 금난새를 몰라? 친구의 표정은 거의 경악 또는 멸시였다. 내가 알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으니 그것은 멸시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물론 친구는 조금도 그런 의도가 없었을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듯한, 순수한 놀라움에서 시작되었으리라.
나는 중2 때 금난새를 몰랐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친구는 금난새를 직접 본 적이 있을까?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유재석을 알듯이 그저 안다는 뜻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친구는 유재석을 모른다는 말에 놀란 정도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금난새도, 유재석도, 또는 조수미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부끄러웠고, 그 친구의 눈빛을, 그 친구의 이름까지도 잊지 못한다. 아마 나의 음악에 대한 거부감은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중3 때, 금난새도 모르고 장조도 모르는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고자 했던 친구가 있다. 그녀는 우리 반 지휘자가 되어 합창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음악시간에 선생님 대신 반주를 했던 친구다.
그녀와 나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지휘를 할 줄 아는 그녀는 내게 금난새만큼이나 먼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나를 집으로 초대한 것은 내가 조바꿈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시간에 조바꿈을 배웠고 시험에 나온다는데 아무리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선생님은 가르쳐준 게 없다. 피아노를 배워서 다 알지? 한마디로 끝났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지 못했고, 우리 반에는 나 같은 친구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못했다. 나와 같은 이유로. 결국 음악 시험에서 조바꿈에 대한 부분을 다 틀렸다. 투덜거리는 나에게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정성껏 가르쳤다. 고맙게도 다음 시험에서는 다 맞았다.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던가 보다. 지금 다시 모르는 걸 보면.
그녀가 나를 집으로 데려간 날은 단 하루였고, 가르쳐준 것도 단 한 부분이지만 나는 그녀가 나에게 음악의 모든 것을 가르쳤다고 기억한다. 왜냐면 그녀의 목소리, 웃음, 동작, 손짓, 몸짓, 그 모두가 음악'적'이었다. 조바꿈은 모르지만 음악적 분위기는 알아버렸다.
그녀와, 그녀와 함께 있던 그녀의 집 그녀의 방과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와 외로움과 문학과 문학 속 주인공들에 대한 그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음악이 되어 내게 전해졌다.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하나도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음악이 되어 내 귀에 황홀하게, 감미롭게 감겨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 앞에서 금난새처럼 모른다고 하기가 부끄러워 아는 척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아는 척을 그녀는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상관없었다. 몰라도 좋았고, 부끄러운 것도 좋았으니까. 그녀가 전해주는 음악은 내 정신을 한껏 고양시켜놓았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대학 때였다. 그녀는 공대생이 되었는데 그녀 특유의 우아함에 공대생스러움을 얹어 한층 신비로워져 있었다. 그때 그녀는 요즘 듣는 팝송(이라고 기억하는데 잘 모르겠다. 팝송인지 또 다른 외국 음악이었는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고, 그때도 나는 다 알아들었다. 몰랐지만 알았다. 모른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스미듯 흘러들어왔으니까.
그 뒤 한 번쯤 더 만났나? 어쩌면 몇 번 더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음악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웃으며 이야기한 얼굴만 떠오르는데 그것이 실재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다. 가끔 그녀의 꿈을 꾸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멀어졌다...
페북이 처음 생겼을 무렵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 여전히 그녀는 멋졌고,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글을 읽다가 문득 알았다. 이제 그녀를 만날 수 없구나, 그녀와 다른 길에 들어서 버렸구나. 왜냐면 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누가 변한 건지는 모르겠다. 둘 다 변했는지도.
가끔 다른 층위에 사는 사람들을 느낀다. 그들은 애초에 다르게 타고난 사람들이고 접점도 없이 그렇게 서로의 세상에서 산다. 그런데 그녀와 나는 각자의 층위 속에서 살다가 우연히도 연결되었고, 꽤 긴 시간을 그렇게 만나졌다. 그녀는 혹시 외계인이 아니었을까, 외계인들이 우리 세계 안에 숨어든 건 아닐까. 그녀를 떠올려보면 그럴 법도 한 이야기다.
사진출처 https://pixabay.com/photos/fantasy-ufo-girl-composing-mood-2696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