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특별해진 것은, 내 그림을 사주었기 때문이다. 2년 전 그림 동호회에서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전시회 마지막 날 거의 끝날 무렵에 온 그녀는 그림을 철수하기 바로 전, 그림 하나를 골라 왔다. 나, 이거 살래요. 농담인 줄 알았다. 일주일의 전시기간 동안 내 손님은 그녀와 같이 온 친구들 뿐이었고, 내 그림을 눈여겨 봐준 사람은 학교에서 온 단체관람객 중 한 아이뿐이었다. 그 아이가 내 그림을 유심히 보길래 하도 반가워서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물어봤다. 어느 그림이 좋아? 저거요. 왜? 다른 그림이랑 달라서요. 너 참 안목이 높구나. 나는 귀에 입이 걸리도록 웃었다.
그녀는 기린 그림을 골랐다. 가장 자신 없어하는 색연필로 그린 그림인데,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라는 단체 프로젝트에 내기 위해서 그린 그림이었다.
내 그림을 보러 와준 것도 고마운데 내 그림을 갖고 싶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나는 얼른 그러라고 했다.
그림을 철수하고 뒤풀이에서 그녀는 얼마 주면 되냐고 물었다. 나는 가져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림값을 내겠다는 그녀에게 그러면 아주 비싸게 받아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녀는 웃음끼 하나 없이 그러라고, 얼마 드리면 되냐고 또 물었다. 그녀가 또 진지해졌으므로 이제 더 이상 농담으로 대충 뭉갤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한 2만 원만 말할까 생각하다, 그것도 너무 민망하여 차마 말을 못 했다. 옆에서 친구가 5만 원 정도면 어떠냐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고, 다시 흐지부지 다른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그녀는 내게 핸드폰을 내밀며 오일파스텔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걸로 대신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마침 오일파스텔을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그녀가 보여준 것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나는 오일파스텔 색깔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대해 마구 떠들었다. 오로지 민망해서였다.
그렇게 또 다른 이야기들로 자리가 채워지고 우리는 헤어졌다. 며칠 뒤 그녀는 내게 택배로 오일파스텔을 보내왔다. 기어이 그림값을 보냈구나, 정말 그녀답다 싶었다. 고맙다는 카톡을 보내고 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새 오일파스텔이 생겼으니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주황색을 꺼내 그림을 한 장 그렸다. 매끈한 감촉이 아주 좋았다. 평소 내가 쓰던 것보다 훨씬 오일감이 높았다. 그녀에게 카톡으로 그림을 찍어 보냈다. 사준 사람에게 잘 쓰고 있다는 일종의 인증이랄까.
순간, 어쩌면 많이 비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오일파스텔이라도 어마 무시하게 비싸기도 하니까. 게다가 색도 많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색을 했는데, 헉!!! 비싸도 너무 비쌌다. 내 평생 절대 사지 못할 미술재료였다. 아니, 너무 비싼 그림이었다. 내 그림은 그렇게 비쌀 수가 없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계산을 했다. 너무 비싸서 내가 물어줄 수도 없을 거 같아... 어쩌나... 딱 한 개 썼는데 그것만 사고 환불할 수는 없을까?
이건 아니야, 이럼 안돼요,라고 말하는 내게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야, 받아도 돼요. 난 이 그림을 그 정도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산 거예요. 이 그림은 내게 어떤 느낌을 줬어요.
난 울고 싶었다. 그녀는 혼자 벌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소시민이다. 그런 그녀가 내게 너무 큰 투자를 한 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았다고 했다. 그런 나를 응원하고 싶은 것이다.
안된다고, 돈을 받던지 아니면 나도 그만한 다른 선물을 해야겠다고 한참을 떼를 썼지만 결국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그녀는 말했다. 앞으로 그 아래로는 그림 팔지 마요. 내가 그 선을 만들어준 거야. 알았죠?
고마워요.
대답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바보, 그 위로 누가 산다고. 진짜 팔릴 일 없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