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학교폭력위원회에서였다. 그녀의 아이와 친구들이 일을 저질렀고 나는 위원으로서 그 아이들의 부모를 만났다. 그녀는 다른 부모들과 달리 몹시 부끄러워했고 우리들에게 미안해했다. 가해자의 부모들은 그런 곳에서 당연히 고개를 숙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최대한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최대한 당당하려 애쓴다. 그래야 혹시 모를 부당함을 겪지 않으리라 믿는다.
또, 다시는 학부모 위원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위원회에서 최대한 고개 숙여 사과했고 모든 일에 원만히 협조했다. 그리고 일이 끝난 뒤에도 나를 모른척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녀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지내게 될 것을 상정하지 않았던 나는 당황했다. 그녀의 친근한 태도가 반가우면서도 낯설였다. 나는 가끔 그녀의 원두막에 가서 토마토를 사곤 했다.
토마토 박스 옆에는 <총, 균, 쇠>가 놓여있었다. 순간 나는 또 당황했다. 그녀가 길에서 토마토를 파느라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새벽마다 토마토 순을 따느라 시커멓게 물든 손톱 밑과 트고 두터운 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책을 읽지 않으리라 지레짐작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 짧은 순간 다른 누군가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스쳐 지나간 걸 보면 그녀에 대해 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이어진 또 다른 인연은 우리가 토마토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녀의 밭과 가까웠고 몇십 년을 토마토 농사를 지어온 그녀와 달리 우리는 완전 초짜였기 때문에 수시로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토마토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가끔 그녀는 아이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묻고 토마토는 잘 되고 있는지 물었지만, 나는 그녀와 길게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단지 내가 스몰 토크를 할 줄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총, 균, 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총, 균, 쇠>를 읽는 그녀의 또 다른 삶에 대해 듣고 싶었다. 지금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책을 읽은 흔적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슬쩍 물어봐도 딸이 심심할 때 보라고 줘서.. 라며 무심히 넘겨버렸다.
불행히도 그녀의 아이에게 또 다른 사건이 생겼다. 고1 아이를 교사가 때렸다. 그 교사는 때린 것은 인정했지만 사과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사과를 받고 싶어 했고, 그 교사의 수업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옛날 사람이었다. 선생이 아이를 때릴 수도 있는 거고, 아이가 과하게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내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나는 갈등조정에 대한 공부를 하고 피 가해자 지원하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 마음 읽어주기, 피해자로서의 권리 등을 설명해주고 그녀와 함께 학교 방문을 동행해주었다. 그녀는 교장 앞에서 불안해하고 흔들렸지만 잘 해내었다.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 마음도 지지해주었다. 그렇게 잘 마무리될 것 같았는데 변수가 생겼다.
그 교사가 인맥을 동원해 내게 연락해온 것이다. 아이를 설득해달라고 했다. 그 전화를 받기 바로 전, 그녀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학교에 동행해주어 고맙다며 보리밥정식을 사주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교사의 행태가 역겨워 그녀 앞에서 먹은 걸 다 토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열이 올랐다. 며칠간 몸살을 했다. 결국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다. 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몸이나 챙기라고 했다.
나는 피 가해자 지원 일을 그만두었다. 그쪽 일을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막혀왔다. 지금 생각하면 토마토 농사 일과 그 외 다른 일들을 하느라 몸이 축났던 것 같다. 원래 변변찮은 몸뚱이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럴 만하다고 넘어가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게 미안함과 고마움 그 이상의 감정을 가졌다. 이전의 친근함에 걱정을 더해 수시로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다.
1년 뒤 우리는 이사를 했다. 모든 관계를 멈추고 있는 지금 가장 자주 전화하는 사람이 바로 그녀다. 몸은 괜찮은지 뭘 하며 사는지 묻는다. 나는 괜히 시기가 겹쳐 그녀에게 부담만 주었다는 생각에 그럴 필요 없다는 마음을 전하려 애썼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상황에 얹어진 감정보다 그저 사람을 아끼고 마음을 주는.
그녀의 마음을 받기만 했던 나는 이제 와서 후회를 한다. 왜 그리 곁을 주지 못했을까. <총, 균, 쇠> 때문이었을까.
나의 그녀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자꾸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누구 엄마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그녀의 삶에 대해 묻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 삶에 대해, 나라는 사람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무엇이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총, 균, 쇠>가 떠올랐다. 내게 그녀는 총, 균, 쇠만큼이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킨 것 같다. 내일은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내 삶에 대해, 내 글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야기 건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