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말해준 그녀

by 천둥

그녀는 새를 다룬다. 믿을 수 없겠지만 새를 부르고 대화하고 날려 보내기도 한다. 어릴 때는 개미도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엄마가 그런 능력을 남들에게 감추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 하다 보니 개미는 안되고 새는 아직도 그녀의 친구가 되어준다고 한다.


그녀와 아주 깊은 산에 간 적이 있다. 그녀를 따라간 거라 어디인지는 잘 모르지만 꽤 깊이 차로 들어갔고 관광지 같은 곳에서 빵을 사 먹었다. 다른 손님들도 꽤 있었는데 새가 우리 테이블로 날아들었다. 그녀는 어린 내 아들 손을 잡고 빵부스러기를 손위에 올려 새에게 먹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들은 신이 났는데 그녀의 엄마는 짐짓 못 본 체했다. 그녀는 엄마 눈치를 보더니 새를 날려 보냈다. 그 뒤로 아들이 빵부스러기로 아무리 불러도 새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가 영적으로 맑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귀가 얇은 나는 유난히 그런 것을 쉽게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이가 하는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에이, 설마 라든가 진짜? 같은 반응보다 오! 그렇구나, 가 바로 나온다. 양자물리학으로 보면, 어차피 우리 눈앞에 놓인 입자도 제대로 측정할 수도 없다는데(과학은 어렵다. 이 표현이 정확하게 맞는지도 잘 모른다) 어떤 것에 대해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사기를 쳤다고 해도 손해 본 일은 없었으니 괜찮다. 게다가 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럼 된 거지.

물론 가끔 그녀가 하는 말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저 옷은 기분이 안 좋으니 멀리해야겠다거나 어떤 초콜릿은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 그럴 때도 얼른 그 옷과 초콜릿을 내가 가져오면 그만이니까 상관없다.

아니, 사실은 나도 그녀를 믿지 못한 것을 이제는 안다. 정말 그녀를 믿었다면 그녀가 보는 세상에 대해, 나는 볼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 그녀 눈에 보이는 풍경에 대해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알고자 애썼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말한 것을 신기해하고 사실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내게 자신을 열어 보여준 것은 힘겨웠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미심쩍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온전히 믿어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그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신해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이다. 노랫말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어떤 것으로 해석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 그 자체다. '믿는 것', '꿈'은 말 그대로 그녀가 눈으로 보고 듣고 '믿는 것'이고 잠들어 꾸는 '꿈'이다.


남들이 뭐래도

니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려 들지 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면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를

애써 상대하지 마


그녀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다. '잘'그린 다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쉽게 그렸고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와 방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림 그릴 때 그녀는 행복해했고 빛이 났다. 그림을 공부하고 싶어 했으나 그녀의 아빠는 그런 특이한 거 말고(예술일 뿐인데!) 교사가 되라고 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그녀에게 그런 아빠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영혼이 그런 부모가 필요해서 찾아온 게 아닐까 싶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전생에 새였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동물은 무서워해도 새는 안 무서워하는 거라고 한다. 아마도 사람 가까이 있는 새였던 것 같다고 했다. 개나 고양이에게 쫓기는 경험이 있는. 그리고 작은 새였던 모양이라고, 몸집이 큰 것에 쉽게 움츠리는 것 봐서 그럴 거라고 했다.

내가 새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새가 영적으로 맑았을 거라는 느낌에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새로, 나.

내 필명으로 쓸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