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의 서재를 마을 밖으로 꺼내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녀는 특히 그림책을 좋아해서 그림책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문서적과 소설 모두를 내놓았다.
그녀가 처음 서재 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나는 마음이 부풀어서 어쩔 줄 몰랐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문화공간이 생긴다는 기쁨도 컸지만 그녀라는 사람이 만들어갈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그전에도 그녀를 알기는 했다. 가까운 이웃이었고 친구의 올케였으니까. 하지만 또래도 아니고 아이와 연결되는 지점도 없다 보니 딱히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서재 도서관을 여는 순간 그녀는 사적 존재가 아니라 공적 존재가 됨으로써 나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설 수 있었다.
그림책 도서관이라니 나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간직했던 내 그림책을 몽땅 내놓기로 했다. 이 기회야말로 내 그림책이 빛을 발하겠구나 싶었다. 아이들 손때가 묻은, 꼭 가지고 있고 싶은 책 네댓 권을 제외한 모든 그림책을 기증했다. 그 외에도 그림책과 관련한 책이나 아직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들은 모두 기증했다. 오래된 책꽂이가 텅텅 비도록.
그녀의 도서관은 후원자들로 운영된다. 그녀가 베짱이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지음으로써 후원자들은 개미가 되었다. 개미들은 월정액을 내면서 자유롭게 도서관을 이용하고 운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베짱이인 그녀는 월 1회 소식지를 발간해서 개미들에게 보낸다. 베짱이답지 않게 어찌나 성실하게 그림까지 그려서 만드는지 개미들은 목을 빼고 소식지를 기다린다. 얼마전 5주년 기념으로 책이 되어 나오기도 했다. 책을 기증했다는 이유로 내게도 소식지가 올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철저히 기증자였을 뿐. 허허.
하긴 나는 월정액을 내지도 않았고 도서관에서 하는 여러 가지 행사나 책모임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다른 일로 바빠서 그랬고 이후에는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집콕을 하느라 그랬다. 사람과 거리두기를 해야 할 만큼 나는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내 눈에 그녀는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두기를 참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 타지방에서 좁은 지역사회로 시집 와서 숱한 시어른들과 시누이, 말 많은 이웃들까지 주변에 포진해 있었지만 그녀는 꿋꿋했다. 하긴 문화적 볼모지인 곳에서 서재도서관처럼 진취적인 일을 벌이려면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 "살면서 자신을 돌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딨어." 그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조금 속 좁은 생각을 했었다.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거 아닌가, 하고. 서운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이 가진 의미를 조금씩 알아갔다. 우리는 모두 너무나 깊이 연결되어 있어 각자가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 서로를 잘 돌보고 좋은 이웃이 되고 결국 좋은 사회가 되는 제일 빠른 길임을 그녀는 이미 몸으로 깨우쳤던 것이다.
좋은 사람만 곁에 두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너무나 가상해서 부럽기도 하지만 얄미울 정도다. 지나치게 경계 없이 마음을 주다가 상처 받는 분별력 없는 나는 아주 경계가 분명하지만 품이 넓은 그녀를 보면서 여전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지금 이 글이 바로 그렇다.
그녀가 만든 서재 도서관은 뒤늦게 내게도 연결되었다. 그림책을 다시 사랑하게 되고 그림책 작가를 꿈꾸게 되면서 그녀가 만든 공간에 자주 가게 되었다. 아무 때고 가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면 그곳에 그녀의 취향이 구석구석 묻어 있었다. 몇 시간이고 앉아 그림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가지 않는 시간에도 거기 그곳에 서재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냥 좋았고 안정감을 주었다.
눈 오던 날이 생각난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창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책을 보고 다시 또 창밖을 보다가 책을 보곤 했다. 적당히 추웠고 적당히 조용했고 적당히 운치 있었다. 어느 순간 와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이들이 묻히고 들어온 눈송이와 바람이 코가 찡하도록 나가고 싶게 만들었다. 눈을 밟으며 집으로 걸어오는데 멀리서 붉게 고요가 내려앉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 멀리 이사를 왔다. 이곳에 와서도 그녀의 도서관을 통해 만난 이들과 랜선으로 그림책 모임을 하고 있다. 모임에 그녀는 참여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항상 그녀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모임은 항상 편안했다. 그래서였을까. 이제는 나도 그녀처럼 심리적 거리두기가 될 것 같았다. 마침 그 지역에 갈 일이 있어 그녀의 공간을 방문했다. 그녀는 커다란 눈을 더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함박웃음과 깊은 포옹으로 나를 환대해주었다. 환대하는 것이 그녀의 특기인지라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그녀는 다정했고 그녀의 공간은 여전히 따뜻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금 울었다. 뭘까. 이 당황스러운 감정은. 한번도 들어간 적 없는 그녀의 울타리가 그리웠다. 쫓기듯이 문을 나섰다. 아니 내가 나를 쫓아냈다. 넘어설까봐. 나는 또 내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느낌이 선연했다. 나는 무엇을 바란 걸까. 그건 그녀의 경계가 아니라 어쩌면 나의 경계였을까.
이즈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취해온 쿨한 내 태도에 진력이 났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기지 않고 살아온 가족들에게 이번만 특별히, 보통과 다르게, 각별하게 뭔가를 해보자고 조르거나 작은 스킨십에도 감동을 표했다. 감정의 과잉상태에 놓인 나를 얼르고 달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과잉이었다. 여전히 나는 기울어있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녀처럼 다정한 환대와 적당한 거리감의 균형을 언제쯤이나 실현해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건 그녀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통해 지금의 나를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그녀의 이야기가 사실은 그러하다. 내가 쓰는 그녀들은 모두 그녀가 아니다. 그녀들을 보는 나의 지금이며, 그녀들을 만나고 알아온 과거와 현재 중 어느 날 어느 순간의 인상일 뿐이다. 그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그녀는 여전히 질척거리는 나를 거울처럼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그녀, 자신의 서재를 내놓는 그녀, 꾸준히 거리를 두며 그 일을 해오는 그녀, 여전히 정성껏 그림을 그리는 그녀, 그녀가 하는 많은 것들을 부러워한다. 그녀가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