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의 그녀들

by 천둥

협동조합을 한 적이 있다. 세 가정이 함께 일을 시작했다. 서로 오래 봐왔고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양보와 희생을 체화하는 삶,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 공동체를 시작하던 그날은 먼지바람이 많이 불어오던 어느 봄날이었다. 봄, 하면 따스함을 떠올리지만 따가운 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계절이다. 우리는 웃느라 입으로 들어오는 먼지를 기꺼이 마셨다. 일하는 게 아니라 꿈꾸던 세상을 사는 것 같았다. 풋고추 하나로 밥을 먹고 물난리가 나도 첨벙첨벙 장난치며 웃었다.


3년쯤 지나면서 한 사람이 나가기로 했다. 수익이 너무 적어서 생활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던 우리. 각자 가진 것을 서로에게 나눠주며 지냈던 우리. 있는 거라곤 성실성 하나뿐이었다. 그놈의 성실성이 각기 다른 채도와 명도로 서로에게 비침을 몰랐었다.


나가는 사람 대신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했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그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새벽에 해야 하는 일이니 차 있는 내가 해야겠다 말했고 다른 사람은 자기가 가장 튼튼하니 자기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 그리 알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기 남편이 하던 일이니 자기가 하는 게 맞지 않냐고 우겼다. 결국 누가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이 참 따뜻해졌던 순간이었다. 우리가 무슨 동화책에 나오는 사이좋은 형제야? 하면서 웃었다. 기특했고 자랑스러웠고 고마웠다.

그 한순간만 기억하려 한다. 그날의 그녀들만 기억하려 한다.


예상하다시피 우리는 얼마 못가 그 공동체를 해산했다. 공동체라는 것은 독립적인 각자가 모여서 더 큰 우리를 만드는 것이지 부족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녀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되기까지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많이 고달팠다. 구구절절 말할 필요도 없는 많은 일들이 삶을 억눌렀다. 이제야 그녀들과 웃었던 날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동안 그녀들을 머릿속에서 쫓아내고 지우기에 바빴다. 처음에는 누가 잘했고 못했고 그때 이랬어야 하고 저랬어야 했다는 생각이 앞다퉈 튀어나왔다. 불면의 밤이 이어지면서 나만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인생에서 그런 무구한 마음으로 순수한 관계를 맺어봤다는 훈장이라 여기려 한다.


시간은 기억을 흐리게 한다. 때로 미움도 흐리게 한다. 체로 거르듯 좋은 것만 남고 나쁜 것들은 다 사라지게도 한다. 그녀들을 이제 그 추억 속에 아름답게 남기련다. 기록이 주는 힘으로.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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