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녀는 그보다 잘할 수가 없게 엄마에게 잘했다. 최소한 우리가 보기에는 그랬다. 엄청난 효녀였다. 엄마가 철석같이 믿고 자랑스러워하고 모든 것을 물려주고 가고 싶어 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지만, 엄마가 철마다 보약을 해다 먹인 며느리도 있지만 그녀가 엄마 곁을 지켰다. 엄마가 가시기 전날까지 매일 무엇을 드리면 입맛이 조금이라도 살아날까 궁리했다. 그래 봤자 그때 엄마의 상태는 한입도 채 드시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가만있지 않았다. 원기에 좋다는 건 뭐든지 사다가 죽을 쒀서 가져갔다. 엄마가 매일 인삼이여 버섯물이며 달여서 며느리에게 들고 나를 때, 그녀는 결핵에 걸린 상태였다. 잘 먹어야 낫는다는 결핵에 걸린 딸보다 며느리에게 정성을 쏟는 엄마를 그녀는 말없이 도왔다. 엄마의 손길에서 제외된 것을 탓하지 않았다.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친 자신을 탓했다. 물론 그 아들이나 며느리가 엄마에게 잘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그녀가 없었더라면 아들 며느리로서는 당황스러웠을 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남동생은 그런 그녀를 고마워했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아들을 찾았고 아들에게 더 주기 위해 딸에게 적게 가질 것을 엄마 앞에서 확답하게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할 만큼 했기에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고 했다. 엄마와의 관계를 아는 가까운 이들은 그녀의 어깨를 도닥이며 이제 끝났다, 고 말했다. 그녀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립지도 않다고 했다.
언니, 내가 그렇게 못됐다.
그녀는 그렇게 행동과 다른 자신의 마음을 자책했다.
가끔은 내가 뭘 잘못해서 엄마의 마음을 사지 못했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럴 때 그녀는 동굴 속에 몸을 웅크린 아기 같다. 자식들을 보면서 자신이 자식들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그 속 쓰림을 엄마를 이해하는 데 썼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친정엄마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았는지 잘 알기에 그것을 자신의 엄마, 즉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해주기를 바랐다. 남편의 마음을 듣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네 엄마한테는 네가 해.
다행히 그녀의 남편은 금방 알아들었다. 아차차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할 마음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졌어?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는 반대로 온통 엄마의 관심과 지원과 애착을 받았다. 물론 그 안에 애정은 미미했다. 그녀의 엄마가 그녀에게 준 애정이 미미했듯이.
나는 받지 못해서 준 거 같아. 여전히 갈구했던 게 아니고, 주는 것으로 그 부족함을 채웠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해. 그러니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효는 아니야.
그녀의 남편은 이미 넘쳤으므로 더하지 않기로 했다. 그 또한 진정한 의미의 효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안쓰러워했다.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부모의 자애로움이 선제되었을 때야 가능한 거야.
그녀가 시어머니에 대해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본 내용이었다. 자식의 효된 도리를 말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자애로움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 말은 내게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 언니. 그 말을 남편에게도 전해줘야겠다.
우리는 수시로 이 말을 떠올리기로 했다. 받지 못한 이들에게 내놓으라는 횡포를 휘두르는 부모들을 대할 때, 그리고 자식 된 입장보다 부모 된 입장이 먼저 다가오는 입장이 되었으니 자를 베풀지 않고 효만 강요하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강요한다고 이행되기란 쉽지 않다. 선행될 것은 선행되어야 한다.
덧. 부모가 아무리 딸에게 적게 주고 싶다고 해도 법은 그것을 막아놓았다. 편협한 눈을 채 못 뜨고 가신 그녀의 엄마가 관 뚜껑을 열고 뛰쳐나오실 일이겠지만 세상의 법은 조금, 아주 조금 나아지고 있어, 그녀에게도 엄마의 흔적이 정당하게 남겨졌다.
젠장할, 브런치 키워드에도 효도는 있는데 자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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