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보고 싶었어요. 언니랑 대화하니까 진짜 너무 좋다.”
지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의 2년 만인 듯하다.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 산다.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 쉼 없이 움직이면서 다른 세계를 만난다. 남편의 휴직 기간만 간다더니 아예 그곳에 한국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그녀를 만난 건 지역 모임에서였다. 당시 다들 40대 중후반이었던 멤버들과 달리 그녀는 30대 초반이었고, 모두의 이쁨을 받았다.
“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언니랑 깊은 대화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
“아, 진짜?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멀리 있으니 외로워서 더 그렇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다며, 그동안 내가 해준 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하나 꼽아보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때 내가 몹시 괜찮은 언니이기를 바랐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회원에게 이왕이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마음 말이다. 후배가 꼽는 최고의 언니. 캬, 생각만 해도 폼나지 않는가. 그런 쪽으로 욕심이 있는 편이다. 대부분 실패하지만. 잘해준답시고 너무 나서다가 뻘쭘하기도 했고, 마음 준 만큼 받지 못해 상처 받기도 했고 아예 팽당해본 적도 있다.
다행히 조금 성숙해진 후여서 그녀에게는 적당히 티 나지 않게 잘해주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적당하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이 차이가 있으니 너무 언니 행세를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친구처럼도 곤란하다. 같은 어른으로서 존중하면서 친근하게 대하고, 주로 들어주면서 살짝 한마디 얹어주는 정도만 말해야 한다. 연락 오면 반가이 받아주고 너무 연락이 뜸할 때는 슬쩍 필요한 것을 건네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준다.
그녀에게 내가 괜찮은 언니로 기억된 데에는 우리 아이도 큰 일조를 했다. 그녀의 아이는 우리 아이를 많이 좋아하고 따랐다. 우리 아이는 동생들을 귀여워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는 타입이다. 귀엽다고 마구 안고 놀아주다가 지쳐 떨어지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놀고 있는 아이 주변에 있다가 아이가 손을 내밀면 자기 손을 내어주고, 옆에서 지켜보다 위험하면 어느새 가서 잡아주는 식이다.
그녀가 둘째를 낳고 힘들어할 때 우리 아이가 그녀 아이의 베이비시터가 되어주었다. 동생에게 관심을 빼앗긴 큰아이에게 형아를 선물해주자고 제안했다. 서너 살 먹은 아이들은 큰 형아를 참 좋아한다. 10살쯤 많은 큰 형아들은 같은 어린이로서 함께 놀면서도 자신을 귀여워하고, 어른처럼 안된다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원래도 우리 아이를 각별히 예뻐했던 그녀는 너무 고마워하며 그녀 아이와 놀아주는 우리 아이에게 용돈을 듬뿍 주었다.
우리는 자주 오갔다. 우리 집에 그녀 아이를 맡기러 오기도 했고 우리 아이를 데리러 오기도 했다. 오갔다고 하지만 만나면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으니 만났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예민한 성격이다. 예전에는 까탈스러움으로 받아지던 예민함이 요즘은 다른 장점의 측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그렇다. 그녀는 미세먼지 같은 공기 질의 문제나 수돗물 문제 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때그때 행동했다. 사회활동가로서의 운동성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그 본인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 그녀는 실제 몸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그녀는 온갖 서명을 받고 다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어린 아기를 데리고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뭐하는 짓이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를 몰랐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하지만 그녀는 정말 그것이 너무 불편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한국 땅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그녀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보다는 아무래도 여유롭고 느긋해질 테고, 자연환경이 좋으니 공기도 쾌적할 테니까. 그녀의 예민함을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고 편견이 앞섰다. 반면에 그녀가 과연 그들의 느린 삶의 방식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그곳의 맑은 공기를 사랑했고 그래서인지 많은 부분에서 느슨해진 듯하다. 코로나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고 있지만, 이런 팬데믹 상황에서도 잘 견뎌내고 있는 걸 보면.
“언니, 보고 싶은 마음 꾹 누르고 있다가 이렇게 전화통화라도 하면 숨통이 트여요.”
그녀는 한국에 오면 꼭 만나자고 나중을 약속하지만, 함께 살던 지역을 떠나 각자 멀리 이사한 우리가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중이 뭐가 중요하랴. 지금 현재 서로를 떠올리고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면, 그러면 된 거지.
시작은 괜찮은 언니로 보이고 싶은, 약간은 자기애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진짜 괜찮은 언니가 된 것 같다. 또한 괜찮은 언니에게는 괜찮은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가볍게 다가가고 귀하게 대한다. 지나치게 내게 관대한 그녀를 겪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대해지면 얼마나 진실한 관계가 형성되는지를 경험한 셈이다.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자신을 옥죄지만, 적당히 의식하는 것은 온전한 관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민망할 정도로 그녀가 칭찬을 해서 내가 너무 좋은 면만 보여줬나 싶은 마음이 없잖아 있지만, 음, 나 과거에 잘 살았구나, 하는 만족감으로 약간 으쓱하는 거, 가끔 해볼 만하다. 그리고 그건 진짜 나이기도 하니까.
어... 오늘은 자뻑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네. 그녀 이야기인데... 그녀에게 고맙다(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