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 정
‘나의’라니, 그녀에게 그런 수식을 쓸 수 있을까. 비록 나의 그녀 시리즈가 나에게 의미 있는 이들에 대한 나의 헌정이기는 해도 그녀 정에게는 나의 라는 소유격을 쓰는 것부터 그녀 고유의 성질을 해치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그녀가 전화를 했다. 아무리 그녀가 문득 생각이 났다고 말했어도, 전화를 받는 나는 무슨 일일까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그녀와 가까이 살다가 내가 이사한 지 1년쯤 되었다. 1년 만의 전화라는 얘기다. 그녀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정말 문득 전화를 했음에도 그녀는 용건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졌다. 내게서 받은 피아노를 누군가에게 주려고 하는데 그래도 되는지, 아끼던 피아노이니 혹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아니, 없어. 네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녀는 와랄랄라 웃으며 알았다고 답했다. 섬세한 그녀.
다시, 무슨 일이 없으므로, 안부를 물었다. 응 잘 지내. 그녀는 내 목소리가 밝다며 잘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 가끔 나와 관련 있었던 곳에 가면 내 이야기를 한다고, 잘 지내나 궁금했다고 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막 헤어지고 이제 차에 올랐을 그녀가 내게 톡을 했다. 오늘 만나서 좋았다는 인사였다. 그런 톡을 매번, 돌아오는 길에 받을 수 있었다. 여럿이 만났을 때도 그녀는 여럿을 한 번에 모은 단체 톡방에 또는 각자에게 항상 그런 톡을 했다. 만남에 대한 감사와 행복한 마음에 대해서 또는 오늘 만난 주요 내용에 대한 기록을 보내왔다. 그런 그녀가 있으므로 우리는 모임 공지나 기록 같은 걸 하지 않았다. 무신경하도록. 마치 그녀의 몫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그런 그녀가 내 목소리가 밝다고 했다면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게 맞을 거다.
요즘도 글을 쓰는지 내가 물었다. 어후, 그러게 그게 잘 안되네. 뭔가 강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여전히 창작욕에 불타고 있었고, 하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림책을 내고 출판 기념회를 하는 걸 보고 나도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나를 그림책 작가라는 길로 인도해준 셈이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작품이랄 게 없다고 말했다. 역시 언니의 성실함이란. 그래. 언니, 그게 다야. 그거지,라고 그녀는 답했다.
그녀는 상대의 장점을 끊임없이 칭찬하고 극대화해서 자신감이 생기게 하는 데 재주가 있다. 누구라도 그녀 앞에 서면 자신의 장점을 찾을 수 있고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을 받을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안달하는 나와 달리 욕심내지 않는다. 부족함조차 너그러이 떠안고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동시에 부지런히 인연을 만들어간다. 일상의 모든 이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 그녀만의 매력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함께 도서전에 갔는데, 그녀는 모든 부스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책에 대해서 질문하고 출판사나 출판과정 등을 궁금해했다. 궁금해하고 질문을 한다는 건, 그녀가 그동안 쉬지 않고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녀는 매월 많은 양의 책을 사고 읽고 책과 연결되어 있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남들에게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소개한다. 나는 그녀가 스스로 작가라고, 그림책 한 권을 낸 작가라고 소개할 때, 그녀가 너무 부러웠다. 내가 아직 제대로 된 그림책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만일 내가 그림책을 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소개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줄 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단단히 세운다.
그녀가 책을 많이 사는 것만큼 많은 아이들을 후원한다는 사실은 가까운 지인들도 몰랐다. 어느 날 그의 남편이 아내의 흉이랍시고 우리에게 이르듯 말했다. 생활비의 절반을 뚝 떼서 아이들을 후원하는 데 다 쓰느라 항상 생활비가 부족한 거라고. 그녀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떠벌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그런 그녀가 천사처럼 보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착한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로 아낌없이 주는 사람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외모와 달리, 아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외모만 보면 아직도 친정엄마의 후원을 받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처럼 보인다. 물론 친정엄마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고는 있다. 가족의 적극적 지지와 인정을 받으면 사람이 얼마나 밝을 수 있는지 그녀를 보며 알게 되었다. 그녀의 엄마는 딸이 글을 쓰고 책을 내었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대견해했다. 남들처럼 대학도 못 보내주었는데, 훌륭히 커주어서 책을 내는 사람이 되다니, 하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과하지 않게 표현했다. 당신에게 과분한 딸이라고 아끼고 헌신했다. 그런 친정엄마가 얼마 전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녀가 얼마나 상심이 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녀의 엄마를 잃은 것이 마치 세상의 보물 하나를 잃은 것 같아 아쉬웠다. 자애로움을 가진 어머니, 헌신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신 어머니, 평생 일해오신 어머니, 그런 당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머니, 자식에게 미안함보다 고마움을 더 표현하는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세상에 그런 어머니가 있다는 걸, 내 눈으로 보고 내 옆에 산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를 추모하러 가지 못했다.
자기에게 빚이 있어,라고 나는 말했다. 그랬다. 내가 그녀의 전화를 불편하게 받은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아마 그녀도 그랬으리라 짐작했다. 엄마를 잃은 자신의 모습을 다시 내보이는 것이 몹시 힘들었을 것이라고.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일이었잖아. 빚 같은 거 잊고 편하게 연락하자.
역시 그녀는 나처럼 감정을 왜곡하지 않았다. 그녀의 너그러움에 나는 순순히 빚진 마음을 뒤로하기로 했다. 다시 따뜻한 그녀에게 기대기로 했다. 그녀는 가감 없이 '따뜻했다.' 호기심이 많은 그녀가 숨 쉴 틈 없이 질문을 쏟아낼 때, 여행용 캐리어에 가득 차도록 그림책을 담아 눈웃음을 치며 들어설 때, 특유의 맑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줄 때, 위로받고 싶은 날 찾아가면 누구보다 공감해주고 결국은 웃게 해 줄 때, 그녀는 빛났다.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은 감동과 감정이 묻어났다. 나는 그게 부러웠고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평안했다.
따뜻한 그녀는 모두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 안에 그녀는 없었다. 그녀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나 있어서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실체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고 자유롭게 떠다녔다. 가끔은 그것이 당황스러워 그녀를 곁에 매어놓으려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언제나 웃으며 둥둥 떠다녔다. 공기처럼.
그래, 그녀가 공기라면 좋겠다. 그녀가 공기로 떠다니며 무한 긍정 에너지를 발산해준다면 굳이 내 곁에 앉히려고 애쓸 필요 없겠지.
또 문득 그녀가 전화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