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이 있을까? 나와 그녀는 대학교에서 심지어 같은 단체 같은 부서에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의 경우는 초중고 동창이 흔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인구가 폭발하던 시기, 한 학년이 20반이 넘는 거대학교를 나왔다. 한 반에 80명이 넘었고(내가 78번이었다.) 4학년까지 오전반 오후반으로 운영되는 학교였다. 저녁반까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인근에 학교를 지어 분교했다. 고등학교도 15반까지 있었고 우리 반은 78번이 끝번호였다.
그녀와 나는 같은 반이 된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말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나와 숨 쉬는 공기가 달랐던 10번대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마저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인연에도 그녀는 내게 별로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녀는 누구에게나 그랬다. 쌀쌀맞냐면 전혀 아니다. 타고난 천성이 다정다감하고 감각적이고 남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뭐랄까, 독립적이었다. 두세 명이 항상 같이 붙어 다니며 재재거려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없는 무엇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복잡한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굳이 비밀로 꽁꽁 감추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그때그때 대화에 필요한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아마 어린 시절 온 가족이 삶에 대한 공허함을 겪었던 것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선택해서 떠난 적도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몇 달 정도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그녀를 독립적인, 원초적 고독에 일찍 눈뜨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렇다 쳐도, 이후에도 그녀는 잘 모르겠는 사람이었다.
일단 직업적으로 그랬다. 수시로 직업이 바뀌었는데, 다음을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가 너무 큰 직종이었다. 예를 들면 간호사를 했다가 평생교육사를 했다가 정수기 코디를 했다.
어느 정도의 공부, 자격증이 있어야 가능한 것도 있는데, 그녀가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외성이 더 컸다. 갑자기 무슨 마음으로 그런 변화를 가지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그 일을 시작하면 그 직종에 너무나 딱 맞게 어울렸다.
사실 그녀와 나는 한 번도 둘이 만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과 모임 안에서 같이 만났다. 대학 부서라든지, 산악회라든지 동창회라든지. 그렇다고 우리가 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신뢰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 다만 개별적이고 무람없는 관계를 ‘하지 않을’ 뿐이다.
그녀에 대해 쓰기로 한 것은 누구보다도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녀가 보여준,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 말이다. 그녀는 엄마와 적당한 거리, 친구와 적당한 거리, 남편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산다. 아이와 적당한 거리는 굉장히 힘들어했는데, 자신이 유지해온 일관된 거리를 아이에게도 적용하기 위해, 자식이기 때문에 더 필요하니까, 무척이나 노력했다.
조언과 강요의 차이- 조언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조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면 강요라는-를 그녀는 만남 속에서 항상 보여주었다. 내가 엄마 때문에, 남편 때문에 힘들 때 그녀는 적당한 자신의 이야기와 적당한 응원과 적당한 조언을 했다. 약간의 강요가 필요하지 않나 싶을 때조차 그녀는 섭섭할 만큼 선을 지켰다.
타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음을,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아이 키우며 겨우겨우 받아들이던 나에 비해 그녀는 이미 그것이 몸에 배어있었다. 관계가 어려울 때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리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단호했다. 그녀만큼 단호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예민하고 예리해서 날카롭게 지적했다. 하지만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그녀가 찌른 게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회 인문학적 ‘용어’를 그녀처럼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여자들은 그녀와 같은, 친구라기엔 도반 같은 누군가가 다들 있지 않나. 그녀는 내게만 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 여자들에게 한 명쯤 있는, 도반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혜안을 가질 수 있게 자기 자리를 비추어주는 보살같은 도반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코로나 이후의 삶에 관해 조언을 들어봐야겠다. 그녀라면 우리 같은 소시민이 취해야 할 현명한 태도를 이미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