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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05. 2020

어쩌다, 귀

 

어쩌다 귀를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면 어디부터 보세요? 이상형을 묻는 작업 멘트 중 하나인 그것을 묻고 다녔다. 대체로 얼굴을 보죠, 눈? 입?

동양인들은 눈을 보고 서양인들은 입을 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대히트를 쳤던 미피가 미국에서는 망했다고 한다. 동양인인 나로서는 왜 입을 보나, 야하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눈맞았다는 말을 하고 서양인들은 눈만 맞으면 키스를 하는구나, 까지 생각이 미친다. 어쨌든 눈이 먼저 맞아야......


어떤 분은 한동안 사람들 코만 보고 다녔다고 한다. 어릴 때, 학교에 가려면 남고를 지나쳐야 했는데 남학생들이 우르르 등교하는 길을 여학생 혼자 뚫고 지나간다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단다. 그래서 눈을 살짝 내리깔고 다녔는데 어느 날 남자애들이, 쟤는 맨날 거기만 봐,라고 쑥덕거리더란다. 그 뒤로 눈을 마주치지는 않고 아래로도 향하지 않게 하다 보디 코만 동동 떠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릴 때 엄마는 티브이를 보면서 모든 탤런트(사실은 남자만)의 귀로 관상을 봤다. 저 남자는 귀가 저렇게 크고 귓불이 늘어졌으니 귀하게 살지, 저 남자는 귓바퀴가 당나귀처럼 크고 넓으니 남의 말을 저리 잘 듣지, 등등.

아버지의 귀가 크고 축 늘어졌기에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는 배역 속의 남자와 탤런트의 실제 모습을 구분하지 않고 말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별로 귀하게 살지 못했으므로 엄마의 관상은 사실 신빙성이 없다.     


엄마의 관심이 이제 와서 내게도 영향을 끼치는지 요즘 부쩍 티브이를 보면서 배우들의 귀를 자세히 본다. 관상은 아니고, 사람의 귀가 굉장히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귀가 다 귀처럼 생겼겠지 뭐,라고 생각했었는데, 귀를 눈여겨보기 시작하면서 정말 희한한 귀들을 많이 발견했다. 사람을 얼굴로 구별하는 것만큼 귀로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다르다. 물론 딱히 특징이 없는 얼굴이 있는 것처럼 귀도 특징이 없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잘 생긴 귀, 누가 봐도 독특해서 기억에 남을 귀, 누가 봐도 크게 될 상이야 싶은 귀가 있다. 자주 보던 사람도 어느 날 문득 저렇게 특이하게 생긴 귀를 왜 여태 못 봤을까 싶도록 별난 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크러쉬나 코드쿤스트의 귀를 보라. 주먹귀라고 표현하는, 엄청 큰 귀다. 그들은 워낙 귀가 큰 걸로 유명하니 그렇다 치고, 이종석의 귀는 약간 위로 올라가있다. 보통 귀는 눈부터 입에 위치해 있는데 이종석은 마치 눈썹부터 코에 붙어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정해인의 귀는 귀바퀴의 윗부분이 얇고 넓다. 누군가가 조물조물 만져놓은 것 같다.)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는 귀를 눈여겨보기가 쉽지 않다. 귀로 눈이 가기에는 거리가 좀 필요하다. 가까이서 상대의 귀를 보게 되면 사람의 뒤를 보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의 뒤,라고 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할 때 시선이 상대방 뒤쪽을 향하던 상사가 있었다. 마치 너와 마주 앉아 있는 게 자존심 상한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때 알아봤다. 그는 우리 팀을 맡자마자 내가 올린 모든 기획안을 폐기해버렸다. 6개월만 잘 버티면 진급을 하니까 어떤 일도 새로 벌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1년짜리 비정규직이었는데 덕분에 나도 그의 시선 따라 그의 귀만 보다가 실적 없이 재계약도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의 귀는 작고 유난히 까맸다.)     


귀의 용도는 듣는 데 있지만, 현대인에게 귀는 청각 그 이상이다. 무언가를 거는 곳이다. 안경을 걸고 마스크를 걸고 이어폰을 건다(듣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요즘 아이팟은 듣는 것 말고 하나의 패션이 되었으니까). 마스크로 귀 뒤가 뻐근해질 때면 귀를 꼼꼼이 문지르며, 네가 고생이 많다, 하고 토닥여준다.  


얼마 전 터미널 앞에서 놀라운 것을 봤는데, 바로 귀청소방이다. 어릴 때 언니가 수시로 내 귀를 청소해주었는데 너무 자주 하는 바람에 빨갛게 상처가 생길 정도였다. 딱지가 앉을 만하면 다시 귀를 파고 싶을 정도로, 귀 청소는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자제가 안될 만큼 중독성이 있다. 언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베고 누웠고 언니는 할 거 없어, 하면서도 손은 내 귓불을 당기고 있었다. 언니가 없는 사람들은 귀 청소방까지 가는구나, 싶었는데, 사실 그곳은 귀 청소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퇴폐업소라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다칠까 무서워서 귀 청소를 못 해줬는데 다 큰 요즘, 아이들을 내 무릎에 눕히는 재미로 자꾸 귀 청소를 권한다. 귓구멍도 사람마다 다르다. 큰아이는 귓구멍이 넓고 일직선이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귀지도 크고 흰 편이다. 작은 아이는 귓구멍이 작고 꼬불꼬불하다. 시커멓게 보이지도 않으면서 노란 귀지가 나온다. 참, 그러고 보니 내 동서는 귀 청소하는 것을 보여주는 유튜브를 즐겨본다고 한다. 참나, 사람은 귀 모양만큼이나 희한하고 다양한 취향을 가졌다. 그걸 왜 보는 걸까 싶지만, 내가 아이들 귓속을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겠지.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이렇게 다르게 생긴 사람들의 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어쩌면 그들은 다르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모양새를 보는 게 아니라 기능을 보는 거니까. 나처럼 기능적인 걸 모르는 사람이나 모양에 사로잡히는 거겠지. 어쩌면 내가 귀 모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상대의 속을 모르겠어서, 생각의 꼬리라도 잡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 장기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체질이 달라지듯이 귓구멍도 각자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위해 교묘하게 설계된 것이라면 어떨까? 귀에 대한 연구가 극성을 부리겠지. 들려주고 싶은 것을 잘 듣게 만드는 귀 성형이 유행할지도 모른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귀 모양으로 말이다. 오, 그건 절대 열려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문이다.  


“엄마, 생각은 귀로 하는 거지?”

아들이 어릴 때 진지하게 말했었다. 아이는 생각에 깊이 빠지다 보면 귀 뒤쪽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고 귀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한 듯하다. 너무 그럴듯해 차마 웃지 못했다. 실제로 집중해서 생각할 때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못하니까 생각이라는 게 귀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라고 ‘아들 바보’인 엄마는 그렇게 아이 말에 신빙성을 부여했다. 

만일 아이 말대로 귀로 생각을 한다면, 그 안에서 꺼내는 귀지는 생각 찌꺼기겠지. 생각의 찌꺼기를 그런 식으로 꺼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생각 찌꺼기는 꺼내서 훌훌 털어버리고, 아이의 생각 찌꺼기는 잘 펴서 몰래몰래 들여다보고 싶다. 그것들을 잘 모아 거르고 걸러 이야기보따리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온 동네 아이들의 생각의 찌꺼기를 모아 이야기로 만들어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 장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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