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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19. 2021

올림픽 선수들이 준 선물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

올림픽 선수들이 나온다기에 평소 챙겨보지 않던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챙겨봤다. 여느 올림픽과 달리 메달의 색이나 개수보다 경기력에 집중하고 선수 개개인의 노력에 환호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세상이 달라졌음을, 변화하고 발전하고 좋아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동안 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그런 문제제기(오로지 금메달만 조명하는)는 꾸준히 있어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바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시민들의 인식 변화에 깜짝깜짝 놀란다.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싶다. 미투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굵직한 현안을 통해 폭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좀 맞아야 해, 덜 맞아서 그래,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물론 아직도 가정폭력, 학교폭력, 데이트 폭력, 그 외 무차별 폭력이 난무하고, 그에 대한 대처가 미흡해서 2차 가해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라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 풀니스>는 세상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한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한스 로슬링은 통계학 분야의 석학으로 사실을 토대로 한 세계관을 키우는 데 평생을 헌신했다. 그는 사람들의 비합리적 본능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풍부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맞다. 우리의 착각과 달리 세상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세상은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세계는 1단계 국가가 1, 2단계 국가가 3, 3단계 국가가 2, 4단계 국가가 1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2단계 국가가 무려 3이다. 아직 1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국가가 1이나 있다. 1단계 국가는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해서 흙바닥에서 자고 물을 긷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티브이에서 보는 극도의 가난이다. 2단계는 하루 4달러를 버는 수준이다. 자전거가 이동수단이고 전기가 불안정해서 냉장고를 쓰기 어렵고 화로에 요리를 한다. 3단계는 수도와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저축도 한다. 4단계가 바로 우리들이 사는 모습이다.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2단계나 3단계의 인프라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70억 인구 중에 10억의 인구만이 이렇게 사는데, 마치 우리는 대다수가 4단계에서 살고 거기서 최상급에 가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이 책의 목적은 생각보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세상이 생각보다 못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아직도 절대다수가 중간층인 2단계와 3단계에 분산되어 있는 세상에 사는 인류가 폭력이 나쁘고 1등보다 노력에 환호할 줄 아는 지성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나는 그것이 조금 감격스럽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는 내내, 그동안 노력한 자신을 믿고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는 안창림 선수를 보면서, 지는 게임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gps거리가 더 많이 나오도록 상대보다 더 뛰기로 했다는 안드레 진 선수를 보면서 너무 느꺼웠다.

어쩌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보다 인식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의 뉴스라든지, 군 성폭행 사건이라든지, 또는 대선을 향한 후보자들의 코미디 같은 싸움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우리는 금메달에 목숨 걸던 그 인류에서 벗어난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손으로 미투를 단행하고 폭력과 음주와 실내 흡연을 몰아낸 세대란 말이다. 나도 그들에 속한단 말이다!(보탠 건 없지만, 이런 말을 전할 수는 있다. 한스 로슬링이 말하기를, 나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세상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이란다.)


충분히 자랑스럽지만 욕심을 부릴 건 또 부려야겠다. 여전히 능력주의를 중심으로 경쟁을 조장하는 학교의 시스템, 이것도 언젠가 무너뜨려주면 좋겠다.

사실 이미 싱어게인이나 팬텀싱어, 슈퍼밴드 등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상대를 떨어뜨리고 자신이 올라가야 하는 경쟁 시스템인데도 불구하고 함께 즐기고 응원하는 모습에 시청자들도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악마의 편집을 보면서 얼마나 불편했던가.

이제 국가대표들이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노력만이 아니라 우리네 보통의 사람들, 아이들의 작은 노력에도 격한 박수를 보내고 서로를 응원하는 날이 올거다.

이것도 머지않았다. 효리언니(멋지면 다 언니니까)가 말하지 않았는가. 훌륭한 사람 같은 거 말고 아무나 되라고. 곧 그런 날이 올 거다. 아무나 되면서 아무개의 삶을 각자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니까. 우리는 그걸 아는 세대니까. 으쓱~     



사진출처 여성 체조 실루엣 재주 넘기 - Pixabay의 무료 벡터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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