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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01. 2020

꿀밤 맞고 싶어

잠자는 시간이 다가오면 참 좋다. 곧 아늑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쉴 수 있구나, 싶은 마음에 설레기까지 한다. 어떤 이들은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는데 나는 그 시간을 위해 사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잠자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죽어지면 계속 잘 텐데, 따위의 이야기를 하면 잠이 들을까 무섭다.

밤에 일찍 자면 아쉽기는 하다. 하기 싫어 미뤄놨던 일들도 지금 하면 금방 해낼 수 있을 것만 같고, 아직 못 본 덕질 영상이나, 한창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소설, 아직도 놀아달라고 쳐다보는 반려동물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등이 아직은 잠들고 싶지 않다, 를 외치게 한다. 

하지만 잠자러 가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은, 꽉 찬 하루를 보낸 것 같은 날이 있다. 깊은 잠이 나를 기다리고, 나는 보상받아 마땅한 존재인 것 같은, 그런 날 말이다. 어린 나는 그런 순간을 꽤 자주 누렸던 것 같다.     

어린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학교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숙제를 하는 것 정도였다. 숙제가 많지도 않았다. 가끔 포스터를 그려오라고 하는 어려운 숙제도 있었지만 1년에 한두 번 뿐이었다. 할 일을 얼른 끝내고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일에 몰두한다. 그것을 끝냈을 때, 그날 밤이 꿀밤(!)이다. 음...... 곰곰이 돌이켜보니 몇 가지 여건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친구 관계. 주로 친구랑 돌려볼 어떤 일을 하는 거니까. 그런 단짝 친구가 없으면 혼자서 그렇게 사부작 거리지 못했을 듯하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심술쟁이 언니가 발로 차 버린다든지 어린 동생이 손대면 곤란하니까.

그 일이란 건 주로 문집이나 일기장을 꾸미는 일이었다. 멋진 시를 적고 사인펜이나 색연필 등으로 꾸미고 오글거리는 소감을 쓰는 것이다. 가끔 촛불로 그슬리면 그럴싸해 보였다. 요즘으로 치면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스마트폰 앱으로 스티커 같은 걸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인류가 누리는 행복이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요즘 ‘다꾸’라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이다. 세상에, 진짜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마치고 뿌듯하게 잠자리로 간다. 세상 위대한 일을 끝낸 마음으로 말이다. 지금처럼 비교당할 걱정이나 더 보탤 것이 없나 머리를 쥐어짜지 않았다. 내 행위에 대한 순수 행복감 그 자체였다. 아무 거리낌 없는 위대함이었다. 지금은 아무리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내도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자기 검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행복의 뒷덜미를 잡는 자기 계발 같으니라고!

그때의 순수한 위대함, 상쾌한 잠자리가 그립다. 이불 밖은 위험한 게 아니고 이불 밖의 우리는 위대했다.    

  

밤에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침잠이 너무 소중하다. 9시 뉴스가 땡 시작하면 코 고는 소리를 내는 새벽형의 아버지는 늦잠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해가 떴는데 눈이 부셔서 어떻게 잠을 자냐는 것이다. 눈꺼풀이 유난히 두툼한 나는 아버지는 눈꺼풀이 얇아서 눈이 부신 거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밤에 늦게 들어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셨다. 마감이 있는 회사에 다닐 무렵 11시쯤 들어오면 그 시간에 차가 다니는지, 누가 이 시간까지 일을 하는지를 캐물으셨다.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것이다. 물론 아침에. 우리가 돌아오는 걸 당신이 보신 적은 한 번도 없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어기고 사는 젊은것들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이라고 야단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씀이 맞다. 그때 아버지 들이 나서서 야근과 야자를 못하도록 막아섰어야 했다. 그랬다면 우리가 이토록 긴 시간 노동에 시달리지 않았을 텐데. 물론 그랬더라도 젊은것들은 야자와 야근 대신 밤놀이를 하고 다녔겠지. 자고로 젊은것들은 밤에 불장난을 해야 크는 것이다. 이 또한 만고의 진리가 아닐까.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하는 것보다 더 싫었던 것은 깨우는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문을 벌컥 열고 이불을 제치며 일어나라, 큰소리로 외쳤다. 군대 기상나팔소리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귓속말로 해야 할 이야기를 반 아이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떠드는 친구보다 더 짜증이 났다. 

우리를 깨우려면 그저 방문만 슬쩍 열어 두면 되었다. 된장찌개 냄새만 풍겨와도 벌써 뱃속에서 꼬르륵 난리를 치는 장이 건강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잠이 들면 새벽이 되어 당신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옆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른다’는 엄마의 한탄을 듣던, 그러니까 자식 넷 중 셋을 밤에 낳았는데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아버지와 달리 우리는 옆 사람의 움직임만으로도 깬다. 언니가 엄마 몰래 전화기를 들고 들어와 소곤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같이 킥킥거렸고, 동생이 자다 말고 똥 마렵다고 끙끙거리면 화장실 문 앞에 서서 귀신 생각이 안 나도록 웃겨주어야 했다. 학교 친구와 다투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오빠의 잠꼬대에 일일이 대답해주느라 밤새 뒤척이다 늦잠을 자기도 했다. 그밖에 내가 늦잠을 잘 수밖에 없는 사정은 갖고 놀았던 개미 수만큼이나 많다. 

내가 제일 좋아한 잠 깨우는 방식은, 자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엄마가 안쓰러워하는 것을 듣는 것이었다. 에그 피곤해서 어쩌냐. 그럴 땐 잘 잤음에도 괜히 엄마 품에 슬쩍 고개를 처박았다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침밥을 먹을 때면, 어젯밤 꿈속에서 벌어졌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꿈 한번 요란스럽다고 혀를 차시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어떤 꿈을 꾸셨냐고 물어봤던가? 아버지의 꿈속을 상상하기란 요원하다. 꿈속에서조차 절대 넘나들지 못하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되어 살아간다.      


아버지처럼 눈꺼풀이 얇아져서 해가 뜨면 눈이 부신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요란한 꿈을 꾸고 잠자기 전 설레는 시간을 보낸다. 비록 꿀잠을 이루지는 못해도 꿀밤을 위해 사부작거린다. 

늙으신 아버지가 지금도 깊은 잠을 주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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