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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03. 2020

비처럼 음악처럼


우리가 결혼하면서 처음 살았던 집은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6만 원짜리, 방만 있는 집이었다. 아니, 방으로 들어오는 입구, 신발을 벗는 공간 옆에 싱크대 한 개를 사다 가스레인지를 올려놓고 부엌으로 썼으니 방과 부엌이 있는 셈이다. 냄비 하나, 밥솥 하나, 숟가락 열 개, 연탄불 위에 얹으면 뜨거운 물을 만들어주는 파란 물통이 있었고, 방에는 이불과 서랍장, 개다리소반, 그게 우리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화장실은 주인집 화장실을 써야 했다. 주인집도 우리 방과 거의 비슷해서,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 벗는 공간이 있고 왼쪽이 화장실 오른쪽이 방, 가운데 부엌 겸 거실인데 밥상이 하나 놓이면 끝이다. 아침에 화장실에 갔는데 밥 먹고 있는 네 사람의 눈과 마주쳤다. 놀라서 되돌아나가는 나에게 주인아주머니는 괜찮다고, 어서 들어가라고 팔을 당겼지만 도저히 볼일을 볼 수 없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 가면 이대입구 전철역이었다. 거기에 가서 큰 볼일을 보고 소변은 우리 집 부엌 공간에서 수돗물 틀어놓고 대충 해결했다. 


시댁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독립을 하고 싶었다. 전세 3천만 원 정도의 집을 얻을 계획이었는데, 집에 목돈이 필요하게 되어서 적금 통장 그대로 내어드린 후였다. 주변에서는 좀 더 준비가 된 후에 결혼을 하라고 만류했지만, 빨리 결혼해서 안정을 찾고 싶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다.     

화장실 문제 때문에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쉽게 익숙해졌다.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바퀴벌레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퀴벌레가 사사삭, 숨는 게 눈에 보였다. 하루 날 잡아 바퀴벌레 약을 터트렸다. 연기로 바퀴벌레를 쫓는 방식이었다. 바퀴벌레 약입니다, 라는 글귀를 문밖에 써놓아야 했다. 화재 신고를 하면 곤란하니까. 효과가 있었는지 한동안 아침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새 만한 바퀴벌레가 날아다녔다. 정말 날아다닌 건지 높이 뛰어올라서 날아오른 것처럼 보인 건지 모르겠다. 밤에 얼굴 위를 푸드덕, 하고 지나간 이후로 얼굴을 내놓고 잘 수가 없었고 밤이 오는 게 공포스러웠다.

결국, 방을 빼기로 했다. 집주인은 곧 재개발이 시작되고 아파트가 들어설 거라고, 우리에게도 딱지가 생길 거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어차피 아파트로 들어갈 돈도 없는데 딱지는 받아서 뭘 하겠냐고, 순진하게도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딱지를 사고파는 게 공공연했었다, 물론 불법이었지만. 어쨌든 내 몫이 아닌 셈이다. 


조금 외곽으로 나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짜리 옥탑방을 구했다. 싱크대가 아래 위로 있는 입식 부엌이 있고 화장실도 있었다. 변기만 덜렁 있는 게 아니라 타일이 깔려 있는 ‘욕실’이었고 냉온수가 나오는 샤워기도 있었다. 그 집을 계약하고 나오면서 우리는 너무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둘이 손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살던 사람이 결혼을 한다며 세탁기랑 작은 장롱을 두고 가도 되겠냐고 한 것이다. 당연하죠, 아니, 감사하죠. 그렇게 우리는 점점 얻어 쓰고 주워 쓰는 데 익숙해졌다.         

옥탑이니까 햇살이 좋았다. 부엌 창문에 파란 줄무늬 헝겊으로 커튼을 만들어 달면서 이전 집에 창문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비가 오면 슬레이트 지붕 위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소리 지르고 춤을 추며 놀았다. 제대로 신혼이라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다만, 너무 더웠다.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집이라 전혀 단열이 되지 않았다. 샤워를 해도 몸의 열이 식지 않아 코에서 단내가 나더니 염증을 달고 살게 되었다.


그래도 그 집이 좋았다. 뭐가 좋았냐고 물으면 빗소리 말고 딱히 없다. 하지만 그 집에서 진정 내 집을 가졌다는 안정감을 얻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다, 는 기억이 있다.     

친구들의 결혼선물 중 가장 잘 썼던 것은 전자레인지였다. 전자레인지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백 가지쯤 익힌 듯하다. 가장 웃긴 것은, 크리스털 양주잔이었다. 도대체 밥그릇도 아니고 컵도 아니고 크리스털 양주잔이라니. 선배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기억하는데, 우리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뭐 이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사할 때마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게 했던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쓰인 적 없이 싱크대 제일 높은 곳에 그림처럼 놓여 있다.


두 번째 집에 와서야 시댁 식구들을 모시고 집들이를 했다. 첫 번째 집은 어머님만 와서 보시고 싱크대와 파란 물통 등을 사도록 도와주셨다. 그날 우리 어머님은 어떤 마음이셨을지, 헤아릴 수가 없다.

집들이답게 불고기도 하고 잡채도 하고 밥상이 부러져라 차려 냈다. 이때 산 MDF 밥상에 컴퓨터를 올리고 이런저런 잡글을 써댔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시댁 식구들은 내게 음식을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그저 설거지만.        


어느 날, 티브이에서 옥탑방으로 걸어 올라가는 가족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살던 옥탑방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지금 누가 살고 있을까.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아파트가 들어섰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 그때 빗소리 들으면서 노래 불렀던 거 기억나냐고 물었다. 

-그럼. 우리 봄비 노래 메들리로 대결하고 그랬잖아. 

-맞아, 맞아. 당신이 박인수의 봄비 불렀는데 너무 똑같아서 막 웃었지. 


우리는 검색창에 봄비,라고 쳤다. 해가 뉘엿해지도록 봄비 노래를 들었다. 박인수의 봄비부터, 하현우의 봄비, 장범준의 봄비, 동요 봄비까지 다양하게도 들었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우리들의 노랫소리가 묻혀버리던 그때를 잠시 그리워했다. 그때 그 시절에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때 그 시절은 그 어떤 것도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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