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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14. 2021

팔렸다, 김한겸

슈퍼밴드 2

“촌스럽고 낡은 장르는 없다. 하기 나름이다.”

슈퍼밴드 2에서 유희열이 말했다.

유희열은 가끔 말도 안 되게 훌륭한 멘트를 날린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지나치게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고집해서 욕을 먹을 때도 있지만 동시에 그 소신으로 음악적 저변을 넓히는 데 일조를 서 모든 걸 상쇄한다. 음악적 분석도 최고다. 분석인지 심사인지 모르게 슬그머니 질문을 던지고 감탄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음악적 시야를 넓혀준다.

유희열의 멘트를 듣는 순간 너무 멋져서 우와, 하다가 멈칫했다. 왜냐면 그 말을 메탈 음악에다 대고 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메탈이 촌스럽고 낡은 장르라는 이미지가 생겨버렸을까. 광고음악으로 많이 나오는 이매진 드래곤즈의 음악도 메탈인데.

몇 년 전 아이돌 덕질하던 후배가 국카스텐 덕질을 하는 내게, 그게 요즘 음악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장르가 다른 거지 요즘 음악이 아닌 건 아니지,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 한 게 두고두고 억울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유희열의 말을 듣자마자 이 일이 떠올랐을까.

그럼에도 유희열의 말이 위안이 되는 건 사실이다. 어찌 보면 클래식 음악도 요즘 음악이 아니어서 촌스럽고 낡은 장르라고 여기는 이도 있는데, 음악이 촌스럽고 낡은 게 아니라 생각이 촌스럽고 낡은 거라고 일침을 날려준 거 같아 속이 다 시원하다.  


요즘 슈퍼밴드 보는 낙으로 산다(그런 분들 많으시죠?). 국카스텐 덕질로 책까지 낸 찐 덕후인 내가 코로나 때문에 덕주 공연을 굶은 지 꼬박 2년이 되어간다. 그러니 크랙샷을 보고 어찌 벌떡 일어나 환호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오은철의 피아노와 뒤집힌 흰자위를 보며 괴성을 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내참. 남자의 흰자위가 그리 섹시할 줄이야). 꺄아아!        

처음에는 서로를 견제하던 이들이 지금은 서로의 연주에 열광하느라 경쟁은 뒷전인 모습도 관전 포인트다. 그들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심지어 상대의 점수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지난주, 윌리 케이 팀이 100점이 나왔을 때, 모두가 놀라고 모두가 좋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럴 때 카메라는 기가 막히게 다른 얼굴을 한 이들을 잡아채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전부 다 환한 웃음으로 100점이 나온 상황을 기뻐하고 있었다. 우리가 100점을 이끌어내다니, 우리 진짜 대단해, 딱 그런 표정이었다. 그동안 항상 굳은 얼굴, 사실은 이성적이고 치밀한 거지만 다른 이들과 견주어 몹시 굳어 보이는 황현조마저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주변에 쉽게 동화되는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특히 초프라까야의 리액션은 보는 이들마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게 한다. 그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라는 단순한 전달력, 전염력이 있다. 그게 바로 덕질의 힘이. 오죽하면 그의 리액션 직캠을 요청하겠는가. 그러니까 초프라까야는 다음 방송에서도 무대 앞 1열에 앉혀주라. 제발~


어떤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순간이 있다. 김한겸이 박다울에게 찜 당했을 때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박다울은 처음부터 김한겸의 재능을 알아봤고 대놓고 그를 원했다. 그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그가 빛나게 해 주면서 최고의 무대를 이끌어냈다. 김한겸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재능은 있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 보컬이라는 낙인을 받고 떨어졌었다. 김한겸은 처음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듯한 표정을 자주 보였다. 하지만 이제 초프라카야 못지않은 기분 좋은 리액션을 보여주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최고가 모여있다고 해서 최고가 나오지는 않는다(이것도 유희열이 한 말이었던 듯하다. 출처를 아시는 분은 댓글로 제보 바랍니다). 뭐든지 그렇지만 밴드는 특히 그렇다. 서로에게서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과의 합,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때 최고가 나온다. 그런데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든 상대의 가치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세상이니까. 그럼에도 상대와 시너지를 내어서 함께 잘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사실 누구나 두 가지 양면이 있는데 어떤 면을 강화할 것인지는 주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김한겸은 ‘팔리는’ 시기를 맞은 것 같다. 박다울을 만나기 전에도 양장세민과 김준서, 유빈이 오로지 김한겸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았고,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냈다. 특히 양장세민은 자신이 김한겸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며 그에게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자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남의 능력을 볼 줄 아는 눈도 가졌다니.

김한겸은 한 번도 프런트맨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은 듯한데 지금까지 프런트맨이고 그는 천상 프런트맨이다.


공자는 ‘나는 팔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을 평가해서 잘 써준다면 상대가 누구이든 세상에 뛰어들어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다. 심지어 주변의 평판이 좋지 않은 군주의 부름에도 응했다. 그만큼 자신의 가치를 빛내고 싶은 마음은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인 것이다.  공자는 평생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찾아 헤맸지만 끝내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공자도 못 얻은 그 기회를 김한겸은 얻은 것이다. 그것이 나는 부럽다. 나도 팔리기를 바란다. 나를 사주세요~ 나도 잘 쓰이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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