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그녀, 할머니

다르지만 괜찮아

by 천둥


오늘은 할머니랑 잘 거야.

할머니가 오신 날 아이들은 할머니한테 달려갔다. 진짜 할머니랑 자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목적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였다.

아이들의 할머니, 즉 시어머니는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 유치원에 이야기 할머니로 나가셨다. 나는 그게 몹시 의심스러웠다. 왜냐면, 그녀가 이야기를 제대로 끝내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웃어대기만 한다. 과연 유치원에서도 그 방법이 통하는 걸까?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전하자면 대충 이러하다.

옛날에~~~ 옛날에~~ 흫ㅎㅎㅎㅎ (이미 여기서부터 할머니는 웃기 시작한다.)

응, 할머니. 옛날에 ㅋㅋㅋ(할머니의 웃음에 아이들은 벌써 신이 나서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흔들어댄다.)

호랑이가~~~~ㅎㅎㅎ힣ㅎ 호랑이가 있잖아 으하항ㅎㅇㅎ(혼자 배를 잡고 웃어댄다.)

할머니, 호랑이가 응, 응? 크크크(호랑이, 호랑이 하며 작은 아이는 이상한 포즈를 취한다.)

흐흐흫흐, 호랑이가 방귀르을, 바앙귀르으을 (그냥 방귀도 아니고 바앙귀르으을, 이라고 말의 뒷부분을 잔뜩 끌어올리고 웃느라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호랑이가 방귀를 캬캬갸갸걐....

끝이다! 아이들은 박장대소하며 웃고 뒹굴며 자기들끼리 엉덩이를 들고 흔들고 방귀 붕붕붕은 해댄다. 할머니도 같이 웃느라 더 이상 이야기를 떠올리지도 못한다. 그렇게 셋이 웃기만 하다가 할머니는 이제 그만 자자, 하고는 아이들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할머니 손에 등을 맡긴 채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까불어댄다. 할머니는 금세 코를 골고 할머니 코 고는 소리를 따라 하던 아이들은 졸린 것을 참지 못하고 내게로 건너온다.


할머니 옛날이야기는 매번 똑같았는데 아이들은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귀를 쫑긋한다. 옆에서 들으면 할머니 혼자 웃는 게 전부인데 뭐가 그리 궁금한 걸까. 게다가 보통 화자가 웃어버리면 이야기는 맥이 빠지게 마련인데, 옛날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는 뭐든지 옆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다.

또 그녀는 잘 울었다. 드라마에도 울고 구성진 노랫가락에도 울고 누군가가 조금만 다쳐도 미간의 주름을 패면서 울면서 안쓰러워한다. 그녀가 다친 부위를 손으로 쓱쓱 문지르면 다만 문지르기만 하는데도 아픔이 잦아든다. 그녀의 거친 손이 그럴 때는 어찌나 보드랍고 따듯하게 느껴지는지. 느낌만이 아니고 실제로 그녀는 치유의 능력도 있다. 둘째 아이가 팔이 빠진 적이 있는데, 아이고 이를 어쩌냐, 하며 덜렁거리는 팔을 붙잡고 팔과 어깨를 문질러주었더니 거짓말처럼 팔이 끼워졌다.

그녀는 신명이 남달랐다. 그녀만이 아니라 집안 내력인 것 같은데, 결혼하고 몇 개월 뒤, 어머님 환갑 때였다. 이모가 아홉인지 자매가 아홉인지, 아무튼 많이 모였다. 누가 봐도 이들은 가족이구나 싶게 모두 닮아서 세월 따라 찍은 사진을 보는 듯했다.

그녀들은 만나자마자 반갑다고 웃기 시작해서 누가 안부를 물으면 답을 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와르르 웃음이 터져 나와서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는 법이라고는 없었다. 이쪽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면 저쪽에서 웃고 저쪽에서 누가 말을 할라치면 이쪽에서 웃어대서 또 다 같이 웃었다. 그 웃음 가운데 또 각자 뭐라고 계속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한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다 같이 따라 부르다가 다음 사람이 또 노래를 이어가고 또 이어가고 또 이어갔다. 음식을 내어도 내어도 끝이 없고 노래를 불러도 불러도 끝이 나지 않는 걸 보다가 나는 그녀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에 처박혀 잠들어버렸다.


아침이 되어 돌아보니 다들 곱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명절에 큰댁에 갔을 때 제사상을 차리기 앞서 여자들이 모두 화장을 했고 어머님은 내게도 얼른 화장하라고 이르셨다. 평소에도 화장을 잘하지 않는 데다 친정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라 몹시 낯설었지만, 이런 게 집안 분위기인가 보다 했는데 어머님들의 자매들도 그런 걸 보면 우리 집만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하긴 평소에도 어머님은 곱게 화장하고 고운 옷 입고 집안일을 시작하신다. 그 화장이 땀으로 다 지워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이면 또 곱게 화장을 했다. 어머님께 화장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거울을 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자매들, 이모님들은 화장을 끝내고 다시 판을 벌였다. 이야기와 웃음과 노래, 거기에 빠진 것이 하나 있지 않은가. 바로 춤. 어젯밤 그걸 채 하지 못했는지 벌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신나게 몸을 움직였다. 다른 가족들은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각자 자기 할 일을 했다. 낯선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였고, 불편한 사람은 시아버님이었다. 아버님도 평생 보아서 이제 그러려니 할 만도 한데 조금도 그러지 못했다. 그런 아버님을 눈치 보는 사람도 역시 나뿐이었다. 어머님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잔치가 끝나고 이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님의 흥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버님은 그제야 조금 불평을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불평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버님은 진정이 되셨던 것 같다.

어머님도 처음에는 그러지 못하셨을 것이다. 긴 세월 많은 어려움을 거치면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것과 양보해야 할 것을 구분했으리라. 어쨌든 지금 어머님은 당신이 즐겁게 살기 위한 노력을 막아서는 것을 참지 않고 그 어떤 방해물도 서슴없이 뛰어넘으셨다.


그녀는 계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봄이 오기 무섭게 놀이공원에 언제 갈 거냐고 물었다. 날 좋은 어느 아침, 어머님을 모시러 가면 내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셨다. 닭을 튀기고 김밥을 싸고 과일을 찬합에 담고 음료를 챙겨 점심나절에야 공원으로 출발했다. 여행은 준비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신 셈이다. 해가 뉘엿하게 넘어가는 잔디밭에서 어머님과 어린 아들이 공놀이를 하는 모습이 놀이공원에서의 내 첫 기억이다. 아이가 노는 것부터가 본격적인 나들이였던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이토록 다른 삶의 방식을 가졌는데도 내가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만의 따뜻한 공감력 때문이다. 겉으로는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나의 태도와 달리 모든 희로애락을 몸으로 즐겨주리라는 듯이 잘 웃고 잘 울고 잘 놀고 잘 받아주었다. 다른 나를 있는 그대로,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나대로의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안부전화를 잘 드리지 않는 것조차 너는 그렇구나, 그래 별일 없으면 됐지, 가 전부였으니까. 덕분에 친정에서 자란 시절보다 더 온전한 나로 살 수 있었다.


시댁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남편에게 뜬금없이 고백했다. 나 우리 어머님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어른에게(나도 어른이지만, 여전히 어른이 어렵다) 쉽게 마음을 내지 못하는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낸 사람이 시어머니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믿을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인생이란 게 참 괜찮은 것 같아 배시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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