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 올가 토카르추크
내 순례의 목적지
인류를 구할 세 명의 예언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올가 토카르추크와 리베카 솔닛과, 정희진을 꼽겠다. 그녀들은 정확한 언어로 진맥 하고(정희진), 모두를 공감시키고(리베카 솔닛), 문학적 상상력을 더하여(올가 토카르추크) 다음을 예견하고 제시한다.
<다정한 서술자>에 화자의 젠더를 중성으로 바꾸는 얘기가 나온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여성-남성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탈피하고자 ‘서술자를 신성하고 전지적인 중립자로 만들’기 위해 동사의 어근에 중성형 어미를 삽입하는 시도를 한다. 폴란드어에는 여성- 남성뿐 아니라 중성이라는 어미가 있다고 한다.
한글에는 아예 성별이 없지만 ‘그녀’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는 잠시 주춤한다. 서술자를 일부러 중성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마당에 우리 입말로는 거의 쓰지 않는 그녀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 걸까 하는 거다. 여자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그녀를 쓰게 된 것은, 여자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갖고 있는 낮은 인식이 싫었고 여성이라는 말에 사회적으로 깃든 젠더적 성격이 싫었다. 중학교 때 처음 접한 그/ 그녀라는 3인칭은 오로지 3인칭으로서 다가왔다. 물론 이 또한 외국어에서 오는 신선함일 뿐이지만, 그래도 처음에 가졌던 그 신선함이 아니고서는 나를 이루는 총합으로서의 그녀들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위 책에는 우리의 ‘몸은 당신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이웃들’의 무리로 뒤덮여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이웃들이란 박테리아나 곰팡이, 바이러스, 고세균 등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생물들에 대한 의존성’을 깨닫기 위해 인용한 것인데 나는 말 그대로 이웃들을 떠올린다. 실제로 나는 그녀들의 총합이지, 이러면서.
올가 토카르추크는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영혼에 대한 그림책을 워낙 좋아하는데, 영혼이 내 몸을 쫓아오지 못한 딱 그 상태였을 때 그 책을 읽었다. 모든 걸 멈추고 내 영혼이 내 몸을 찾아오도록 기다리자, 마냥 앉아서 기다리자, 영혼이 내게 오면 뜨겁게 안아주자, 울면서 다짐했다.
이틀 후 <태고의 시간들>을 발견했다. "세상은 인간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숨을 수 있는 껍데기를 찾아내서 그 안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버텨내는 것이다."
잘 숨는다고 숨었는데 때로는 너무 쉽게 깨지는 껍데기여서 버텨지지가 않을 때가 있다. 조금 찾았다 싶은 자유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껍데기를 찾아 바락바락 기어 다녔다.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글귀지만, 자유로워지려는 의지가 샘솟게 했다.
사실 그녀의 책은 대부분 익숙하지 않은 배경과 신화적이고 허구를 넘나드는 세상을 그리고 있어서 신화적 상상력이 없는 나로서는 몹시 어려웠다. 동시에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 옛날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처럼 익숙했다. <방랑자들>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한번 목격한 질서는 인간의 정신을 일깨우기 마련이고, 그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중요하고 근본적인 선과 면을 새겨놓았던 것이다." 그녀가 목격한 그것을 나는 마치 나의 정신인 것 마냥 읽어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선구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술자를 파놉티콘의 시선으로 보게 하는 걸 즐긴다고 하는데, 선구자가 아니고서 어떻게 파놉티콘의 시선을 갖겠는가. 더구나 4인칭 서술자가 되어 글을 쓸 수 있겠는가. 그녀는 모두가 세상의 안쪽만 볼 때 세상의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다. 여성의 직관이 그녀를 그렇게 이끌어가는 듯하다. 그녀가 <다정한 서술자>에서 소개한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책에 있다는 목각화가 바로 그녀의 모습인 것이다. 이 목각화에는 한 방랑자가 지구의 영역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우주를 보고 있다. 어느 시대든 바깥을 내다보는 이들이 있다. 방랑자이며 이방인으로 살기에 가능하며 결국 예언자이며 선구자가 되어준다. 인류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치와 실천도 따라야 하지만, 그녀처럼 우주의 시선을 가진 이들의 직관도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녀는 지금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다이모니온에 귀 기울여 문학적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세상을 조망하는 자로 사는 느낌은 도대체 어떤 걸까.
그녀처럼 방랑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자주 쓰는 몇 가지 키워드, 모나드, 우누스 문두스, 다이모니온, 별자리 등을 잘 기록해두고 틈틈이 들여다본다.
<방랑자들>에서 그녀는 말한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라고.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가 될 거라고. 집과 차를 가지기 위해, 또 더 큰 집과 더 비싼 차를 탐하는 우리들에게 말한다.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선과 악, 정해진 규칙과 틀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에게 그녀는 시원하게 갈긴다.
보통 책을 읽으면 책의 문장에 밑줄을 치는데 나는 자꾸 그녀에게 밑줄을 친다. 그녀가 '내 순례의 목적은 다른 순례자다'라고 말하듯이 나의 목적은 다른 이야기꾼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