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들이 싫었다. 예쁜 여자들은 예쁜 척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았다. 그것은 예쁘게 타고난 그들의 생득적인 본능이었으니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간혹 내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렇다고 그 기득권을 포기하는 여자를 본 적은 없다. 요즘은 짧은 커트머리나 검은색 정장 등 ‘여성적’인 태도를 버리는 이들을 타겟 삼는 이들이 더 큰 문제지만, 어쨌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하는 이들의 행태는 이전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해지지 않았다.
대학 때 그런 친구가 있었다. 예뻤고,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녀의 어떤 행동이 분위기를 사로잡는다기보다는 그저 존재 자체로 그녀 위주로 분위기가 흘러가버렸다. 그녀가 오는 순간 정상적(?)이었던 술자리가 묘하게 그녀중심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 배경처럼 되어버렸다. 나누던 대화도 달라졌다. 그녀의 웃음과 몸짓만 남았다. 둘이 있을 때는 더없이 좋은 친구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그녀는 그런 자신을 무기 삼아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 만난 수많은 예쁜 여자들도 그랬다.
예뻐서 겪는 원치 않는 일들도 있다는 걸 잘 안다. 영화 <패치 아담스>를 보면, 주인공 헌터가 사랑하는 캐린은 어릴 때부터 예쁜 얼굴 때문에 수많은 성적 폭력과 위험을 겪었다. 헌터는 캐린이 트라우마가 이겨내도록 돕고 진실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헌터도 캐린의 미모에 반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의심한다. 누군가에게 반하는 것 자체가 첫인상 때문이고, 많은 경우 외모에 의한 것이다.
매력적인 것은 눈길을 끈다. 언젠가 겨울에 남편과 거리를 걷고 있는데, 짧은 치마의 여자가 지나갔다. 남편의 눈이 돌아가며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내뱉었다. 그런 반백의 남편을 보고 어이구 인간아, 탄식을 했다. 동시에 내 눈앞에 긴 가죽 코트를 입은, 기럭지와 비율이 남다른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내 눈도 휙 돌아갔다. 음, 잘생은 어쩔 수 없어, 봐줘야 해. 인정! 예쁘고 잘생긴 이들의 매력은 떨치기 힘들다. 그러니 예쁜 여자가 싫다는 건 나의 억지다. 바로 그 억지와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김윤아는 지나치게 예뻤고 지나치게 예쁜 척(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그녀일 수도 있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하고 지나치게 예쁘게 꾸민다. 그 나이에도 여신 같은 외모로 무대를 장악한다. 내 입장에선 당연히 호감을 가질 수가 없다. 그녀가 노래를 정말 기깔나게 잘한다는 것만 빼면. 바로 그걸 뺀다는 게 어려운 거지만. 소름 돋게 잘해서 오히려 약이 오른다(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잘하는 것에 약이 오르는, 밴댕이 소갈딱지다). 노래를 잘한다는 게 내게 큰 의미를 갖지 못했을 때는 그냥 그렇게 외면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국카스텐 덕후가 되어버렸다(덕후 이야기는 요기에 ☞https://brunch.co.kr/brunchbook/geokjil ).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과 위로와 깊이를 알게 되면서, 이제 자우림의 노래는 어떤 편견을 앞세워도 소용없을 만큼 매혹적인 대상이 된 것이다. 라이브로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페스티벌에서 본 그녀는 너무 예뻤고 여전히 예쁜 척(!)했는데 그게 또 무대에서 충분히 멋있고 퍼포먼스 또한 화려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녀의 목소리에 사로잡힌 뒤라 그런 게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꺄~~~~ 악, 언니!!! (언니라니! 나이 검색... 은 해서 뭐해, 멋지면 언니지!)
그날, 무대에서 나를 사로잡은 곡은 스물다섯 스물하나(그때만 해도 귀한 곡이었는데, 드라마<스물다섯 스물하나>덕분에 흔하고도 귀한 곡이 되어버렸다)였다. 집에 돌아와 음악 어플에서 자우림을 검색하고 종일 미친 듯이 그 노래를 들었다. 나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리들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이토록 그립고 슬프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과거를 그리워한 적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항상 이전보다 지금이 더 좋았다. 과거의 추억에 젖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사실 오십이 넘으면서는 조금 달라지긴 했다. 나이 먹으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해버려서 슬프다). 하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듣는 순간만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예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충분히 안쓰러워해 주고 충분히 사랑해주게 된다. 막 성인이 되었던 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나, 내 곁에 있어주었던 그 사람과 사람들. 마음은 우주라도 만들어 낼 것 같은데 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그때, 서로의 체온과 애틋함만으로 충만했던 그때를, 이제는 기억해내기도 힘든 그때를 노래 하나로 훅 불러와 가슴 시리게 만든다. 물론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 시절을 지나온 내가 돌아보아서 아름답다. 지금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아, 이것도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강하게, 스포일러처럼 말해줘 버려서 아쉽다) 그녀는 언니로서, 낚아채 온다. 뮤지션으로서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녀의 솔로 음악, <은지>를 듣게 되었다. 날카롭고도 애절하게 부르는 은지, 풋사과 향을 품었던 그녀들을, 회색으로 시들어가는 그녀들을 안타깝게 부르는 김윤아의 목소리. 그녀는 은지라 부르면서 그녀 자신을, 그녀를 둘려 싼 여자들을, 여자들이 낳고 키워낸 고왔던 그녀들을 한 곳에 불러낸다.
<은지>를 들으면, 또 다른 그녀, y가 떠오른다. 항상 웃던 그녀, 검지로 눈 끝을 잡고 엄지로 입 끝을 잡아 볼때기를 볼록 나오게 만들어놓은 듯, 탈바가지처럼 따라 웃게 만들던 그녀. 웃을 일 없었던 그때의 나도 그녀를 만나면 마구 웃었다. 그냥 자꾸 웃었다. 만난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다. 그때 그녀는 너무 배가 고파 웃었고, 너무 할일이 많아 웃었고 너무 슬퍼서 웃었다. 도대체 웃을 일이 없는 가정사와 고학(요새도 이런 말을 쓰던가!)에 짓눌려서도 웃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웃지 않았다. 더 이상 웃으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힘든 인간관계와 더 힘든 자기비판과 더 더 고통스러운 외면들에 대해 중얼거린다. 그녀는 그대로인데 세상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은 그대로인데 그녀에게만 파도가 덮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게 덮친 파도가 그녀를 보는 눈조차 멀게 했든가. 내 옆에는, 당신 옆에는, 우리 옆에는 y말고도 너무 많은 은지 들이 있어, <은지>를 들을 때마다, 듣지 않을 때에도 서럽고 분하다.
은지를 부르는 김윤아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우면서 따뜻하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그것 속에는 자신의 고통도 예외일 수 없다는 듯이) 깊은 공감과 연대감으로 바르르 떨고 있었다. 바르르 떠는 그것은 점점 진동이 되고 진동은 내 안에서 더 큰 울림이 되어 그녀의 손을 맞잡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어쩌면 예쁜 여자들에 대해서, 그럼에도 그녀들이 나를 에워싼 여자라는 것에, 나를 있게 해준 여자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자우림의 <영원히 영원히>를 듣는다. '너의 손을 꼭 잡고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너와 함께 있고 싶어'라는 지극히 평범한 가사를 김윤아는 목소리 하나로 특별하게 만들어버린다. 어쩔 수 없다. 그녀들과 영원히 연대할 것을 맹세한다.
김윤아의 목소리는 ‘언니’의 힘이 있다. 세상의 언니들을 대표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서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고 불같이 솟아오른다. 가끔 아래를 바라보지만 저 위를 향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거세지만 드세지 않다. 훠이훠이 서러움 날려 보내는 살풀이굿처럼 날아간다. 그러니 어쩌랴.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혼자서는 주체 못 할 비루한 순간이 닥쳤을 때 김윤아가 '눈을 감으'(봄날은 간다)라고 하면 첫 소절만으로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아름다워서 슬’퍼한다.
우연히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김윤아와 기타리스트 이선규가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노래인지는 잊어버렸는데, 노래가 끝나자 이선규가 감탄을 한다. "세상에서 윤아가 제일 노래 잘해. 진짜, 제일 잘해." 추켜주는 게 아니라 진심 어린 탄성이었다. 김윤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아름다웠다. 티브이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되었다. 어른의, 그것도 성별을 달리하는 어른들의 우정과 밴드라는 하나의 세계를 함께 일구어가는 멤버에 대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랑과 존중을 받는 김윤아도 부러웠지만 존중의 말을 스스럼없이 진심으로 할 줄 아는 이선규가 멋졌다. 티끌 하나 얹히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같은 팀이어도. 그 순간 인간은 성선설의 존재였다.
사실 예쁜 여자들에 대한 편견을 말하기에 그녀는 사회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람이다. 자꾸만 내 편견만 두드러질 뿐이다. 그래서 쓴다. 써야 한다. 자신을 직면하고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