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 엄마

당신의 막내 공주가

by 천둥


엄마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원망과 자기 연민을 꽤 장황하게 늘어놓을 것 같아 미루고 미루었다. 그런데 엄마가 예상치 못한 문자를 보내면서 그 시기가 확 당겨지고 내용도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우리, 막네 공주, 생일 축하해, 늘 건강하고"(약간의 오자와 기호까지 그대로 옮겨봤다.)

엄마의 문자다. 그때 나는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코로나 치료에 대한 글은 여기 https://brunch.co.kr/@toddle222/422 ). 위기는 넘기고 머릿속에 구름이 낀 것 같아 멍하니 앉아있는데 띵똥 문자가 왔다. 문자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혹시 나 오늘 죽나? 두 번째 든 생각은 나한테 보낸 거 맞나? 그리고 세 번째는 보이스 피싱인가? 아무리 다시 봐도 분명 내게 온 것이 맞고 보이스 피싱이라기에는 다음 내용이 없다. 그럼 죽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 엄마에게서 뭔가 요구사항이 아닌 문자를 처음 받아봤다.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도 처음이었다. 구름이 머리 위에 테를 두르는 상상을 했다. 더 멍해졌다. 죽기 좋은 날이다~~

죽기는, 멀쩡히 잘 퇴원했다.


우리라니, 공주라니. 누군가는 평생 엄마로부터 듣던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난 아니다. 생전 처음이다. 엄마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동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숱한 시간 동안 엄마는 수도 없이 이 말을 되뇌었을 것이다. 그것까지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귀에 전해져 들려오지는 않았다. 기억에 남겨지지 않았다.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다.

엄마가 그동안 마음속으로 나를 막내 공주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딸이라서, 셋째 딸이라서 받은 설움이 먼저였기에 엄마의 문자은 너무 큰 충격이고 놀라움이고 반전이며 감격이다.

순간 입을 삐죽였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언제부터 내가 공주였나요? 하는 못난 마음이 한쪽에서 꿈틀댔다. 그리고 스르륵 마음이 녹았고 얼어있던 빙하도 녹아서 짠물이 되어 흘렀다.


'또딸'을 낳았을 때 엄마가 느낀 설움과 절망은 내가 받은 그것과는 또 다른 무게였을 것이다. 자식을 낳은 기쁨과 출산의 고통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기에 평생 나의 탄생을 외면했을 것이고 생일이라고 제대로 인정해줄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그런 엄마의 아픔과 인생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고도 남을 나이다. 그래도 엄마의 딸로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애정을 받아보지 못한 내 애정 부족이 엄마의 인생보다 항상 먼저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한번 엄마의 살가운 손길을 기억한다. 고3 때 나를 깨우면서 안쓰럽게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거의 안아주는 동작이었다. 엄마의 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얼른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다른 날보다 더 오래 씻었다. 물 틀어놓고 씻는다고 또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엄마는 젓가락을 조금만 짧게 잡아도 혀가 떨어지도록 쯧쯧거렸다. 길게 잡아야 멀리 시집을 간다고 했다. 나도 엄마 옆에 살 생각 없다고요,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형편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그리고...

아,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김에 왜 엄마에 대해 그토록 사무치는지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은데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감정만 남아있다. 무심하거나 매몰차던 표정 같은 것 말이다. 아니, 이제 그조차 흔한 레퍼토리일 뿐이다. 그새 잊었나 보다.


얼마 전 사촌 조카 결혼식에서 엄마를 만났다. 식이 끝나고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하는데 엄마 얼굴에 서늘함이 사라져 있었다. 우리를 보내는 손길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엄마도 이제 늙었구나. 얼굴에 그 독기 어디 갔나. 멈칫했다.

팔순이 훌쩍 넘으셨으니 당연히 늙으셨지만 엄마가 늙었다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주변의 딸들은 이미 그런 시간을 몇 번이나 맞이하고 마음이 누그러졌다고 하는데 그동안 우리 엄마는 끄떡도 없었다. 그 연세에도 뭔가를 못마땅해하고 꼿꼿하고 사납고 여전했다. 우리 엄마가 꺾이기 전에 내가 먼저 꺾이겠다고 우리 자매는 뒤돌아 앉아 웃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 꺾였구나 싶어 지니 조금 서글펐다. 동시에 마음에 부유하던 원망의 찌꺼기가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참, 요망하기도 하지. 상대가 꺾여야 감정을 내려놓다니. 여태 철이 덜 들었다고 끌끌 댔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기도 했다.


아마 그런 순간을 맞은 다음이어서 엄마의 문자를 조금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엄마가 용기를 내는구나. 엄마가 편안해지는구나. 나도 용기를 내어 받아들여야겠다. 편안해지고 순응해야겠다.

엄마가 평생 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애정 표현을 이렇게라도 해주어 감사하다(받아들이는 연습 중이다). 평생 받지 못했던 애정표현을 오십 넘어서라도 받아서 다행이다(진심이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남편에게 문자를 보여주었다. 소화시키지 힘든 고깃덩어리를 먹은 것처럼 내내 걸려있었지만 누군가와 공유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고깃덩어리였다.

남편은 한참 들여다보더니 막내 공주라는 거 보니 당신 맞네,라고 말했다. 남편도 잘못 보낸 문자가 아닌지 그것부터 의심했었나 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셰익스피어가 그랬다지. 이제 내 기억에는 그날 아쉬워하던 순한 표정의 엄마만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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