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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25. 2021

코로나 치료에 대한 오해 몇 가지

고백하자면, 확진된 적이 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일이 생기려고 하니 평소와 다른 짓을 하고야 말았다.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가겠다거나 우리 집으로 놀러 오면 안 되냐고 묻곤 할 때, 아직은 조심하자고 설득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이 친구가 우리 집 앞에 와있다는 것이다. 저녁식사 때였고, 마침 밥을 푸고 있었다. 그럼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잘 기록하자는 생각을 했다. 안 좋아봤자 글감이니까 걱정은 그만하자, 마음먹었다. 구급차에서 내리기 전, 병원 건물 사이로 하늘이 쪽문처럼 보였다. 핸드폰으로 찍으면서 마지막 하늘일지도 몰라,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했다. 병실 입구에서 000 병동 00호실이라고 쓰여있는 안내문도 찍고, 음압기라는 기계도 찍고, 환자복 입은 내 모습도 찍었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메모도 했는데, 퇴원하면서 확진자들에 대한 깊은 편견에 부딪혔다. 그렇다면 굳이 쓰지 말자, 쓰더라도 1,2년쯤 지난 후에 쓰자,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그래 놓고 갑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쓸데없는 편견을 넘어서야지 하는 공명심 따위는 아니고 주변 지인들이 내가 겪은 이야기를 너무 재밌어하기 때문이다. 다들 확진자 처음 봐, 라는 반응으로 시작해서 예상과 다른 병원생활에 대해 놀라워했다(참, 그전에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임을 이해 바란다). 글쟁이로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재밌어하는데 어찌 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장황하게 입원기는 쓰지 말고 재밌다는 그 얘기만 추려서 코로나 치료에 대한 오해 몇 가지에 대해 쓰고자 한다.


나도 그랬고, 사람들도 그렇고 가장 놀라워하는 점은 병실이 1인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전염이 되는 병이니까 당연히 1인실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미 3인이나 있는 병실로 간호사가 나를 데려갔다.

그럼 다시 전염되는 거 아냐? 사람들은 물었고 나도 그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입원 당시는 내가 제일 전염 성이 높은 사람이어서 한쪽에 가만히 찌그러져 있느라 우려를 표하지 못했다. 그리고 퇴원 무렵에는 언제 퇴원시켜주려나 목 빼고 기다리느라 잊어버렸다.

 

두 번째로 놀라운 것은 음압시설이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글을 써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영민 님처럼은 아니지만 음압시설을 직접 보고 알게 되면서, ' 음압시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에서 음압시설이 있는 병실이 얼마 없어서 큰일이라고 하길래 그게 뭔지는 몰라도 당연히 환자를 위한 어떤 소생 시설 같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간호사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설명해주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오히려 환자에게는 득이 될 수 없는, 공기 차단장치였다. 즉, 우리(우리라니, 확진자와 확진자였던 이들이 내게 우리가 되다니!)가 내뿜는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차단해서 다른 사람들을 우리들로부터 보호하는 장치이다. 압력으로 공기가 못 나가게 했으니 창문을 절대 열지 마라, 열면 압력 때문에 창문이 다 깨질 수도 있다. 뭐 그런 설명이었다. 바이러스를 차단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꼭 필요한 게 맞기는 하는데, 왠지 우리들을 바이러스 숙주 취급하는 거 같아서 씁쓸했다...

어쨌든 음압시설을 하더라도 환자를 위해 공기정화시설을 같이 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건 없었다. 공기를 차단한 그곳에 우리를 넣어두었다가 빼고 또 다른 확진자를 넣고 또 빼는 거다. 인간이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가. 환자란 무엇인가...

     

세 번째로 당연히 14일간 입원할 줄 알았는데 퇴원을 8일 만에 한 것이다. 자가격리도 14일이고 병원에 입원할 때 14일 치를 준비하라고 했으니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 8일 만에 내보낸다. 나는 8일 차 아침에 아직 좀 곤란하다고 하다가 급하게 검사를 해서 밤 9시에 결국 내보내 졌다(몹시 수동태다). 아직 코로나 인자가 남아있지만(이것도 몰랐던 사실이다. 완전히 음성이 되어야 나오는 건 줄 알았다. 음성이 나오려면 한 달도 넘게 걸린다고 한다) 남들에게 전염이 되지 않을 만큼만 수치가 나오면 바로 내보내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가 격리하던 다른 식구들은 집에 갇혀있고 확진되었던 나는 퇴원 후 바깥을 활보하고 다녔다. 음하하하. 남편이 어찌나 억울해하던지. 억울하면 확진하던지... 는 아니고. 퉤 퉤 퉤.  

   

그리고, 생각보다 덜 아팠다. 물론 아프다. 그리고 위험하다. 원체 부실한 몸을 가진 내가 무사히 나온 것을 보고 지인들은 코로나 별거 아니네, 너무 호들갑 떨었네, 하면서 경계를 푸는 태도를 보였다. 음... 너무 호들갑인 건 조금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경계를 풀만큼 별거 아닌 것은 아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 병을 아직 모른다. 백신이 나오긴 했지만 치료제도 만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저 진통제를 먹여서 통증을 가라앉힐 뿐이다. 하루종일 독한 약을 먹은 것처럼 멍한 상태로 늘어져 있다. 나는 아직도 후각이 돌아오지 않았고, 무기력하고 피곤하고 감각이 많이 떨어졌다. 한동안 글을 쓸 수 있는 감수성과 의지조차 사라졌었다(어쩌면 안 써야지,라고 마음먹은 게 아니고 쓸 수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금으로써는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생겼고 또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던 것에 비해서는 덜 아프고 통제가 된다는 것이다. 진통제가 꽤 효력이 있다. 진통제를 먹고도 통증이 여전하던 날도 있지만 하룻밤뿐이었고, 진통제 외에는 별다른 약을 먹지 않아도 견딜만하니, 그만하면 다행 아닌가.   

   

사실 확진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날 밤 걱정이 앞서서 잠을 자지 못했다. 행여 이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하여 책상 한쪽에 온갖 비밀번호(은행 계좌, sns 등 네 자리 숫자와 기호를 섞은 12자리)를 적어놓았다.

내게 전염시킨 이에게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건 그저 소나기를 맞은 것과도 같다는 유언 아닌 유언까지 아량 넓게(오지랖도 넓게) 써두었다. 행여 내가 전염시킨 이들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는 내용도 썼다(다행히 아무도 전염시키지 않았다. 집순이는 그렇습니다... 네.) 그러고도 밤새 내 인생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고, 이대로 가면 아쉬울 것은 무엇이고 만일 돌아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하느라 날밤을 샜다.

역시 너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가상 유서를 쓰고 관속에 들어가는 체험을 한 효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코로나 생생체험을 듣던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마지막에 묻는 말은 이거다.

살은 빠졌겠다?

생사를 오가던 두려움에 대해 함께 맞장구치던 사람이 갑자기?! 묻고 나서 무안해한다. 뭐, 궁금한 건 물어야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 빠진다. 아프고 기력이 없어서 내내 먹고 자고 먹고 자니까 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는 도시락 외에는, 먹고 늘 입에 달고 살던 커피, 음료, 간식, 달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을 수 없으니 살이 빠지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그런 살은 나가서 하루만 지나고 나면 냉큼 되돌아온다.

게다가 너무 입맛이 없다. 입원하고 4일쯤부터 후각이 없어지면서 미각도 이상해졌는데, 그 전에도 입맛이 고약했다. 고기는 질기고 생선은 물컹하고 김치는 그냥 배추 삭은 맛이다. 원래 먹는 것에 별 흥미가 없던 나도 먹는 낙이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락을 배달해주던 간호사에게 혹시 빵은 없나요? 묻던 환자가 있었는데, 그건 좀 너무한 것이다.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로서 오죽하면 저럴까 싶다가도 고생하는 간호사에게 할 말은 아니어서 한동안 그 환자를 째려봤다. 눈치못채게.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른, 오해 말고 알던 것 그대로인 사실은 간호사들이 진짜 너무너무 고생한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대부분 젊디 젊은 꽃다운 나이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인내가 없다거나 쉬운 일만 한다거나 3D업종을 피한다고 비난하는 이가 있다면 고개를 들어 간호사들을 보라, 고 하고 싶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처우를 받는 것도 아닌데 종일 방호복을 입고 종종거리며 환자들을 돌본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설명할 것도 없다. 그저 그곳에 존재해주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고맙고 존경스럽다.

입원 첫날 종일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었다. 잘 때까지 써야 한다는 걸 깨닫고 짜증이 솟구쳤다. 그런 투덜거림이 나올 때마다 간호사들을 보며 참았다. 별 유머라고는 없는 내가 그들을 보면 어떻게든 웃게 해주고 싶어서 몹쓸 우스갯소리를 던져보곤 했다. 대부분 반응은 헛웃음이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마음, 받아주세요~


퇴원할 때는 우리가 가지고 들어갔던 모든 물품들(입었던 옷까지)을 가능한 버리게 한다.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들, 핸드폰이나 이어폰, 충전기, 안경 등을 간호사가 일일이 소독해서 건네주는데 그때 가장 울컥했다. 샤워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내 물품들을 소독 티슈로 닦고 다시 소독제로 손 씻고 나를 이중문 밖으로 내보내고서야 물품을 건네주던 모습... 그리고, 마지막 인사 때 유리창 너머의 간호사들이 다 같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환송해주었다(간호사님들, 감사합니다!!!!).

엑스레이 기사님도 그렇다. 보통은 방사선을 피하기 위해 밀폐된 공간에 엑스레이 기계를 두고 기사님도 바깥으로 나가서 찍는데, 우리는 매일 병실로 기계를 가지고 와서 돌아가면서 찍었다. 이것도 환자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고 혼자 울분을 터트렸는데, 그 기사님은 다른 병실까지 다 돌면서 환자들과 방사선을 같이 맞고 있다는 거 아닌가. 마음이 숙연해졌다. 화살은 병원, 아니 의료계와 정부에게로 가야 한다. 아무리 비상사태라지만 환자와 의료계 종사자를 이런 식으로 방치하다니. 제발 공공의료가 제대로 자리 잡고 환자를 위한, 사람이 우선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공공의료 덕에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퇴원하던 날, 한밤중에 길거리로 나와 깊은숨을 들이켰다. 병원 밖 도심의 공기가 이렇게 좋을 수가. 내가 8일간 창문으로 내려다보던 그 거리에 서서 병실을 올려다봤다. 나, 살았다! 여러분도 살아서 이 공기를 맛보세요! 주접을 좀 떨고 나서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나는 큰 어려움 없이 무사히 넘어갔지만 힘든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도 많고 여전히 힘든 사람도 있다. 정말 조심해야 하고 거리두기가 절실하다. 백신을 많이 맞고 있지만 여전히 변이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니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내 경험을 듣고 지나치게 두려움을 갖지는 말았으면 싶다. 심약한 분들은 많이 놀라고 울고 우울해한다. 또 입원해있는 내내 아픈 거보다 확진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퇴원하면서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덜 두려워해도 될 거 같다고. 경계를 늦추지는 말아야 하지만 미리 겁먹지는 말자고. 우리가 할 것은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돌아온 이들에 대한 위로와 환대라고.

그러니까 나, 환대해주세요~~ 경험을 나눈 것도 잘했다고 해주세요~~


덧,

참! 코로나 증상은 열부터 난다고 검색창에서 봤는데 아니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목이 칼칼했어요. 근육통이 오고 열은 이틀 후에나 나기 시작했어요. 케바케겠지요.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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