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 언니

by 천둥

투명한 사람들이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들. 그런 성격을 가진 이들이 부럽다. 하지만 밉살스럽기도 하다. 나는 그녀가 아주 밉살스럽다. 그녀는 거짓말을 못한다. 본인은 속이려는 의지가 강하나 전혀 속여지지 않는다. 엉덩이는 다 나와 있는데 고개만 처박고 남들은 모르겠지, 하는 아이 같다. 아주 투명하다.


그녀, 나의 언니는 미국에 산다. 7년 만에 잠깐 다니러 왔을 때의 일이다. 끽연가인 그녀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담배를 피우러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경고문이 쓰여있었다. 공항 흡연실은 훤하게 뚫려있으니 도저히 안 되겠는지 그녀는 구석진 데를 찾아 헤맸다. 그런 데는 선수다. 하지만 한국은 예전과 달리 후미진 곳 어디에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게다가 언니를 마중 나간 식구들이 계속 옆에 붙어있던 터라 금단현상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언니는 계속 횡설수설이다. 갑자기 과일이 먹고 싶으니 과일을 사러 가자고 했다가 레모나를 먹어야 피로가 가실 거 같으니 약국에 가자고 했다가, 소화가 안되니 잠시 걷자고 했다가...

언니가 담배를 피우는 걸 온 식구가 다 안다. 식구들은 대충 눈치를 채고 피곤할 테니 일찍 자라고 하고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시차 핑계를 대더니 나를 끌고 나왔다. 자신이 감쪽같이 연기를 잘 한 줄 알고 의기양양이다.


투명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절대 혼자서는 못하면서 스스로는 모르는 거. 마트에 가서도 언니는 내게 도움의 손짓이 아주 투명한데 결코 말을 안 한다. 계산대에 있는 라이터 달라는 소리를 못하는 거다. 계산대 앞에서 미적미적 딴짓을 해서 결국 내가 라이터 주세요,라고 주문을 해야 했다.

여전히 해맑은 언니를 데리고 담배를 피울 수 있을 만한 공간을 찾아 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으로 갔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아무도 없었다.


투명한 언니와 달리 나는 불투명하다. 언니를 대신해 이런 작전 수행을 해주는 게 싫으면서도 싫다는 말을 못 한다. 기꺼이 해주거나 아예 모른 척할 수 있다면 나도 투명해질 텐데. 결국은 나서게 되지만 언니 앞에서 감정을 숨기고 담배연기 속으로 뿌옇게 사라진다.

가족은, 오랜 관계가 그러하듯 처음 설정된 관계를 바꾸기가 어렵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마음을 굳게 다져도 순식간에 처음으로 돌아가버린다.

내게 언니는 그런 사람이다. 멀리 살기에 적당한, 만나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약간 부담스럽고 약간 고마웠던, 왜냐면 그녀는 언니라는 책임감으로 내게 베푼 것이 너무도 많으니까. 이제 언니는 현재 진행형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현재 진행형인 그녀의 모습이 있다. 어린 자매였던 우리가 한 이불을 덮었을 당시, 그 어느 날 밤 언니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눈빛을 떠올리면 그녀가 둘도 없는 내 언니로, 나를 형성한 그녀로 되살아난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고 언니가 고등학교 막 들어갔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나이 든 지금에야 5살 차이가 별거 아니지만 어린 시절 초등과 고등은 아기와 엄마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에도 언니는 가끔 늦은 밤 내 콧등을 톡 치고선 있잖아, 하고 언니 친구나 책 영화 같은, 내가 동경해마지 않는 열일곱 소녀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특히 영화를 보고 온 날은 찬 공기를 잔뜩 묻히고 들어와 잠든 척하는 내 눈앞에 스크린을 펼쳐 보여주었다. 그럴 때 언니는 영화의 감동이 아직 언니의 몸속에 가득 차 있는지 말을 한다기보다는 몸속의 그것들을 구슬로 빚어 내뱉는 듯했다. 나는 그 구슬이 내 심장 위를 달그락거리며 굴러다니는 게 좋았다. 상기된 목소리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하면 나는 애가 닳았다. 그래서? 응? 자꾸 묻는 내게 언니는 피식 웃으며 이제 그만 자, 하고 돌아누웠다. 나는 언니가 잠든 뒤에도 그 구슬을 만지작거리느라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날도 언니는 내 콧등을 치고, 자냐? 물었다. 나는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눈을 반짝 떴는데 언니의 표정이-이걸 표정이라고 해도 될까? 표정이라기에는 그냥 영혼 그 자체였다. 환한 영혼이 그대로 발가벗겨져 있었다. 발그레해진 얼굴이 눈앞에 있는데 언니가 거기 없었다. 언니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를 보는 게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였고, 거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았다.

그날 언니는 영화 <테스> 이야기를 했다. (테스 형 말고 테스 말이다. 명작이기도 하고 영화로도 나온 테스.) 사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도 책을 읽지도 않았고 지금도 내용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볼 마음이 없다. 그 어떤 책과 영화보다 더 선연한 기억이 있으니까. 언니는 이야기를 시작만 해놓고 침을 삼키며 골똘히 혼자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야기는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했고 배우 이야기인지 주인공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다 알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언니의 말이 아니라 언니의 눈을 보며 그냥 알아졌던 것 같다.

깜깜한 밤, 언니의 눈이 빛났고 또렷해졌다. 내 눈도 점점 환해졌다. 언니는 그 밤, 작은 우리 방 이불속에 있지 않았다. 언니가 바라보던 그 너머의 세상 속으로, 언니 안에 자라고 있는 여자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언니를 바라보는 나는 순간과 영원이 어떻게 만나는지 알아챈 성자가 된 기분으로 몸도 뒤척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날 언니는 언니로서, 여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나는 언니 덕분에 지성인으로서 고독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도 언니는 내게 수많은 언니 노릇을 했지만, 내게 언니는 그날의 언니, 먼저 여자가 된 소녀의 순간 속 언니로 충분했다.



큰언니.jpg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photos/hand-silhouette-shape-horror-98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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