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를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그녀, 라는 표현을 떠올리자마자 바로 떠오른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 어린이집에서 만난 사이다. 하지만 아이 친구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 멀다. 우리는 동지에 가까웠다. 동지. 이 말이 딱 맞는 사람. 평소 나는 평생 한 명의 동지라도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동지를 30대 중반에 만난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 육아, 교육, 그리고 사회생활에서도 거의 의견 일치를 보는 찰떡같은 사이였다. 그래서 함께 공동육아를 했고, 대안학교를 찾아 헤매고 함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사를 오고, 심지어 잠깐이지만 한집에서 살기도 했다. 같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뤄서 살겠다는 꿈도 꾸었는데 주변 여건이 어그러지는 바람에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동지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육아에 있어 희서는 내게 스승 같은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누구보다 생명농업과 자연, 환경에 진심인 사람이라서 어려운 용어를 줄줄 읊어대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건강한 밥상을 위해 철저하게 실천하며 살았다.
무엇보다 그녀만큼 아이를 온전히 믿어주는 엄마를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러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 라는 게 있다면 고개를 들어 희를 보라,고 외칠 수 있다. 사는 곳이 멀어지면서 관계가 소원해질 때조차도 그녀는 처음 그 마음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
그래도 굳이 동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회나 정치에 대해서도 함께였기 때문이다. 사실 동지라는 건 내가 어떻게든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싶어서 하는 소리일 뿐이다. 그녀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지만 나는 별로 그렇지 못했으니까.
그녀가 좋았던 것은 힘이 셌던 탓도 있다. 다음 세상이 있다면 힘센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그녀를 보면서 처음 했다. 작은 몸집에 어찌나 에너지가 많은지 목소리도 카랑카랑하고 몸도 빠릿빠릿해서 뭐든지 두려움 없이 내가 할게,라고 나선다. 그건 지나친 자신감도 아니고 희생정신도 아니고 그냥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의 몸가짐이었다. 내가 조금이나마 뭔가를 열심히 했다면 그건 그녀의 그런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음, 지금 생각해도 멋있어~~ (물리적으로 힘이 센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넘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으나, 진짜로 힘도 셌고, 그때 나는 그녀의 그것이 ‘힘’으로 느껴졌다.)
사람이 좋으면 발도 이뻐 보인다는 말을 그녀를 통해 처음 느껴봤다. 어느 날 두 부부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앞 좌석에서 앉은 그녀가 발을 올려놓았다. 뒷좌석에 앉아 그 발을 보면서 참 이쁘기도 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날의 햇빛까지 기억한다. 좀 변태 같지만. 차에 흐르던 음악 소리도. 항상 김광석이었지만.
이제 동지보다 주군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온전히 깨어있는 자로서 나를 이끌어줄 한 사람이 필요하다. 흔히 리더라고 하는데, 나는 주군이라 부르겠다. 왜냐면, 좀 더 맹목적이고 싶어서.
등불 같은 그녀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