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그녀는 나보다 10살쯤 어리다(분명히 나이를 들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위아래 열 살 쯤은 다 친구지, 뭐). 학부모회 일로 만났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화장실 좀, 하더니 급히 화장실로 직행했다. 나는 티브이를 틀어 소리를 크게 키웠다. 그날부터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볼일 볼 때 예민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뿐인데. 정말 이상한 취향의 그녀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가 좋아한 그녀가 아니라 나를 좋아한 그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 갱년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다. 사람도 싫고 나도 싫고 세상도 싫었다. 집에 틀어박혀서 집순이로 살았다. 그렇기는 해도 얼마 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는데, 거짓말처럼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녀만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오늘은 1시간 정도 있을 거예요, 또는 10분만 앉았다가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시간에 맞춰 나는 그녀 앞에 앉아 있다가 다시 혼자가 되곤 했다.
처음에는 학부모회 일로 만났으니 학부모회 일로 오나보다 했다. 그런데 점점 학부모회 일은 없고 그냥 왔다가 별말도 없이 있다가 갔다. 일 중심적으로 살았던 나는 그런 게 잘 이해가 안 갔다. 뭐지? 왜 왔지? 하지만 왜 왔냐고 물어보는 것조차 귀찮았던 시기라 그러려니 했다.
아이들은 학교 기숙사에 있었고 남편과는 주말부부여서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했는데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날이 저물어버렸다. 그럴 때 그녀가 벨을 눌렀다. 집에서 막 끓인 된장찌개를 한 보시기를 들고서. 그 뒤로도 그녀는 제육볶음, 김치 콩나물국, 볶음밥, 겉절이 등등 가족들과 먹으려고 한 저녁밥을 한 그릇 챙겨 쑥 내밀고 돌아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던 그때 그녀의 밥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연명했을까.
받아먹은 게 있으니 별 수 있나, 그녀에게 조금 곰살맞게 대했다.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보다 했던 태도를 조금 바꿔 그녀에 대해 묻기도 하고 내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속 이야기를 미친 듯이 쏟아냈다. 주로 주변 사람들을 탓하는 얘기였는데 그때는 내가 힘든 것이 다 그들 탓인 것 같았다. 그녀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어도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녀의 말에 힘입어 나는 존중받지 못했던 모든 순간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때의 내 감정으로 돌아가 그때 느꼈던 모멸감을, 그들의 무례함을 되짚고 까발렸다. 그녀는 또 가만히 기다렸다. 실컷 떠들고 울고 탓하고 나서야 나는 조금 가벼워졌는데 이제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제 그녀를 어떻게 보나, 이제 그녀도 내게 정이 뚝 떨어졌겠다,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을 믿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사실은 숱한 뒷말들이 있었고, 아무리 뒷말이 무성해도 나를 믿는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고 무력해져 버린 시절이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온전히 내편이 되어주었다. 자신도 뒷말에 엮일 수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와 경기도교육청에서 하는 회의를 다닌 적이 있다. 경기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일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냈던 게 아닌가 싶다. 항상 그녀의 차로 움직였는데, 우리는 차에서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냥 음악을 틀어놓고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가끔은 자고 가끔은 아이들 이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편하게 가만히 있는다, 가족처럼.
집순이로 살다가 갑자기 국카스텐 덕후가 되어 공연에 다닐 때, 그녀는 가끔 공연장에 데려다 주기도 했다. 한 번은 공연장에 데려다주고 돌아갔는데 끝나는 시간에 다시 공연장 앞에 나타난 적이 있다. 집과 꽤 먼 거리인데, 밤에 달려도 거의 두 시간 거리를 다시 달려온 것이다. 왜 왔냐고, 그러다 길이 엇갈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냐고 타박했지만 솔직히 너무 좋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죠? 이런 말을 해도 그러려니 했다가 진짜 온전히 내 편이구나, 믿어졌다. 마음을 준다는 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전해지는 거라는 당연한 진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그녀는 오로지 늦은 밤 톡으로 길고도 장황하게 애정표현을 했다. 어쩌면 술에 취하거나 자기감정에 취한 것 아닐까 할 정도로. 그러곤 아침이면 내가 좋아해 주는 걸 고마운 줄 알아라, 하는 식이었다. 자신도 이런 적 처음이고 애초에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나이 많은 아줌마를 자기가 좋아하는지 참 이상하다고 했다. 사춘기 때 짝사랑하던 남자애 이후로 처음이라고,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에는 좀 기가 막혔다. 야밤에 이상한 톡을 마구 보내더니 미안하다고 하지는 않고 고마운 줄 알라니. 그래도 여자들 간의 끈끈한 자매애겠거니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게 아니라고 완강히 말했다. 우정 이상의 무엇인 듯한데 자신도 처음 겪는 감정이라 알 수 없다고 했다. 내게 손끝 하나 닿지 않으려 했는데, 흔히 할 수 있는 스킨십은 물론 물건을 건네다 스칠 수 있는 정도도 극히 조심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날개뼈 한 번만 만져보자는 소리를 해서 뜨악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성적 취향을 궁금해한 적은 없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방식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 사랑이 닥치기 전에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랑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만큼이나 다른 게 사랑이구나, 알게 되었다. 그런 애정이 불편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불편하지 않아서 미안했다.
솔직히 그녀의 애정에 관심이 없었다. 연애시절 남편도 그렇게까지 맹목적이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그렇게까지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은 내 인생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할수록 감동스러운 일인데,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 맞는지, 내 마음은 그저 고마움뿐이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항상 미안했다. 그녀는 본인의 감정일 뿐이니 미안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게 더 미안한 일이었다. 예전에 누가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남자들을 보면 상대방의 감정을 즐기기만 하는 나쁜 놈이라고 욕했는데, 그저 무심한 쪽이었던 것 같다. (일방적인 애정을 받아본 게 처음이어서 이제야 그런 마음을 이해하는 내가 조금 웃기기는 하다.)
아니, 그런 것보다 나는 왜 이런 사랑이 처음이라고 생각할까? 엄마도 있고 언니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왜 여전히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할까? 그리고 처음 받아보는 무조건적인 사랑인데 왜 좋지 아니할까? 의심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내게 주어지는 사랑에 관심이 없을까? 그런 게 궁금했다.
사랑받은 사람이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랑받았지만 여전히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만으로는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나 보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내가 너무 무심한가 싶어서 관계 지형이 다른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는 일방적인 감정이 흔히 그렇듯이 나중에 서운해하고 오히려 뒤통수 맞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어떤 면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면서 말을 흐렸다. 더 묻지 않았다. 그럴 수 있겠지, 그것도 할 수 없지, 생각했다. 너무 받은 게 많아서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8년이 넘도록 그녀는 뒤통수를 치지도 위험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고 하고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겠노라고 말한다. 내가 이사를 하면서 그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하는데도. 그러면서도 전화통화를 자주 하거나 자주 보지는 않는다. 예전처럼 야밤에 긴 톡을 보내지도 않고. 이제 정말 자매애가 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나는 그렇다.
공연장에 나를 데리러 와준 날,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잠시 한강공원에 앉았다가 가자고 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달라고 한 게 처음이자 유일했다. 공연의 감동을 깨고 싶지는 않아 살짝 망설였지만 그러자고 했다. 혼자만의 감정의 흐름을 깨고 두 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으로 옮겨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편의점에 라면 끓여먹는 기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신문물이 신기해서 꺅꺅거리며 흥분했다. 우리는 한강을 바라보며 앉았다. 남산타워에 불이 반짝였다. 그녀는 남산타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남산타워를 바라보면 이상하게 아련해진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에 꼭 남산타워를 같이 가자고 약속했다.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는 게 오히려 마음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