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취미

by 천둥

짠순이 친구에게 LP판을 사모으는 취미가 있는 줄 몰랐다.

삼성맨인 남편도 어찌나 짠돌인지 가계부에 마트별로 두부 가격이 적혀있을 정도라고 한다. 젊어서부터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써온 가계부는 결혼하면서 잠시 그녀에게로 넘어올 뻔하다가 자기 기대에 못 미치는 기록을 확인하면서 다시 남편에게로 넘어갔다. 그녀는 정해진 생활비를 받아 쓰는데, 그 가계부를 자신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긴다. 사실 그녀의 짠순이 기질은 오로지 남편으로부터 온 것이다. 정해진 생활비는 물가상승이나 갑작스러운 돌발상황 같은 게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짠순이가 되지 않고서는 가계를 이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낮에 알바를 한다. 그녀의 알바비는 순전히 생활비로 쓰이는 줄 알았다. 그녀가 특별 보너스를 받기 전까지는.

그녀의 시어머니가 시누이 집에 며칠 가게 되었는데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혼자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때 남편으로부터 특별 보너스를 받았다. 500만 원. 나도 그녀도 500만 원이 맞는지, 50만 원이 아닌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전날 혼자 여행을 간다는 그녀가 부러워서 나도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남편이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통장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5만 원이 있었다. 귀여운 남편의 발상을 친구에게 자랑하려고 전화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먼저 500만 원에 대해 말해줘서 다행이다.

아무튼 우리는 각자 여행을 다녀왔고, 여행에 대한 수다를 위해 만났다. 그녀는 500만 원으로 LP판을 샀다고 말했다. 모두! 그동안 알바했던 돈까지 전부!

그녀는 기분이 째진다,라고 말했다. LP를 하나씩 고르고 고르면서 찔끔찔끔 사다가 어느 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아주 신이 났다는 증표의 주먹.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다닌 공연이 4년간 50여 회... 음 그렇구나...'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환상이 있고 그 환상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내가 덕질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그녀의 행동. 내 덕질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쓰일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아끼고 아껴 몰빵 하는 두 여인 ㅋㅋㅋㅋ친구야, 멋져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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