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남편은 아직도 매년 가계부를 쓴다. 기록에 대한 그의 집착은 아버지로부터 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창고 하나 분량의 기록물을 태웠다고 한다. 일기와 가계부와 온갖 서류들이 차곡차곡 연도별로 쌓여 있었는데 그걸 모두 태우느라 일주일이 걸렸다는 말을 듣고 나는 탄식을 했다. 아, 나는 그것이 지금도 후회가 되는데, 예전에 그가 술자리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했을 때 약속을 받아두었어야 했다. 그 기록을 버리지 말라고. 아니 버리더라도 그전에 내게 한 번만 보여달라고. 아쉽게도 나는 그 장관을 보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어르신이 돌아가시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아무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병원이야 늘상 가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가셔서 돌아오지 못하셨으니까. 아니다. 잠시 오셔서 은행이며 모든 것의 명의를 아들에게 돌려놓고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가시더니 다음날 떠나셨다.
그 집에 자주 들락거리고 놀았던 터라서 아버님 장례 치르고 며칠 후 어머님을 뵈러 갔다. 60년을 함께 하시다가 짝을 먼저 떠나보내셨으니 마음이 어떠실까 싶어 쭈삣거려졌다. 괜히 주전부리를 들이밀며 마음이 많이 허하시죠,라고 우물거렸다. 어머님은 벼락같이 큰 소리로 웃으셨다. 아이고, 날랑 인저 혼자라 쏙이 씨원하네, 아주 편해~~
꼼꼼하고 인색한 남편 곁에서 얼마나 답답한 평생을 사셨을지 조금 이해가 되어 배시시 웃어드렸다. 방을 나오면서 누가 들었을세라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님이 가시고 어머님이 너무 편하셨는지 자꾸 주무신단다. 자꾸 앉아만 계신단다. 자꾸 눕기만 하신단다. K는 어머님을 혹독하게 운동을 시켰다. 거실 열 바퀴를 돌지 않으면 밥을 안 주겠다고 윽박질렀다.
일하러 나갈 때는 멸치를 잔뜩 드리고 갔다 올 때까지 다 다듬어놓으라고 했다. 멸치다듬는 것이 치매에 좋단다. 온 동네 멸치를 다 모아다 어머님 앞에 놓는 듯했다.
K는 잠시 우리 집에 와서도 어머님이 안 걷는 것에 대해, 눕는 것에 대해 한바탕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런 그녀를 누구는 시어머니 치매 걸리면 자신이 힘드니까 그런 거라고 하고, 누구는 남편도 안 하는 일을 그녀가 함으로써 남편이 자신을 인정하게 하려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녀가 지극히 인류애적 순수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의 의지와 상관없는 그녀의 닦달이 무엇일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녀 스스로도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아무튼 나는 어머님이 이제 좀 편해지셨으면 했다. 놓을 때도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놓아드릴 때도 되었다는 생각을 남이니까 쉽게 한다. 어머님에게도 힘들었던 일들은 잊고 살 자유라는 게 있었으면 해서. 내 인생이라면 그러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나만의 인생이라는 게 없더라. 나만의 의지, 결정, 선택이라는 게 다른 이들에게 미칠 파장을 우리는 아니까. 아니, 좋게 말하자.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