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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02. 2021

누구나 도사 한 명쯤 알지 않나요?

누구나 아는 도사 한 명쯤 있지 않나? 도를 아십니까? 그 도사 말고, 우리 같은 범인들은 범접하지 못하는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 또는 뛰어난 전문가, 남다른 기술을 연마한 달인 말이다. 


내가 아는 도사는 한의사다. 그러니까 어디가 아픈지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낫게 해주는 도사다.

아이가 백일 지나면서부터 아토피가 심했다. 처음에는 그냥 태열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들 했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당장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되었다. 특히 얼굴이 갈라지고 피가 날 정도로 심했고 손쉽게 긁을 수 있으니 2차 감염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그때 도사님을 만났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의 상태를 도사님은 그냥 척 보고 알았다. 알았는지 몰랐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도사님 손길이 지나가고 나면 아이가 덜 아프니 믿을 수밖에.

도사님은 주로 기치료를 하셨다. 침도 놓고 약도 지었지만 아기처럼 제대로 진료가 어려운 사람들은 손으로 뭔가를 했는데, 그게 기를 넣는 거라고 했다.

간절하면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달리게 되고 믿게 되고 결국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기로 치료한다고 하면 에이, 하면서 사짜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니까 도사님이라고 칭하는 거다. 도사님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도사님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용했다.

 

우리 아이를 치료한 경험 하나 가지고는 도사라 하기 어렵다. 벌써 그 아기가 스무 살이 넘었으니 20년 넘게 내 주변의 친구들에게 그분을 권해왔다. 족히 스무 명은 넘었을 것이고, 그들이 또 다리를 놓은 것만 해도 수십 건이 된다. 거의 영업부장급인데, 10원 한 푼 받은 건 없다. 급할 때 치료를 받았을 뿐.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분을 신뢰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남편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도사님께 갔다. 선생님, 왜 배가 아플까요? 도사님은 남편의 배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장이 3센티 정도 찢어져서 상처가 있으니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 도사님을 믿어마지 않는 우리지만 병원문을 열고 나오면서 막 웃었다. 에이, 아무리 도사님이라지만 너무 하신다. 너무 디테일하잖아. 그냥 보기만 했는데 어떻게 알아? 눈에 엑스레이가 달린 것도 아니고. 그래도 들은 말이 있으니 내과로 갔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3센티의 상처가 있다고 했다! 그 뒤에 어떻게 치료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덕분에 손쉽게 아픈 원인을 찾았다는 게 중요하다.  

얼마전에도 등이 아프다고 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내가 말한 자리 말고도 몇군데를 더 짚었다. 여기에 염증이 있네, 하면서. 왜 거기 염증이 생겼을까요? 물었더니 답이 없다. 도사님은 자신이 다 고쳐준다고 하지 않는다. 내과의 문제는 내과로, 정형외과의 문제는 정형외과로 보낸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응급실로 생각한다. 아프긴 아픈데 이게 어느 과의 문제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않나? 머리가 아플 때 배가 아파서 아플 수도 있고 다쳐서 아플 수도 있고 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병의 원인이 뭔지 몰라 병원을 여기저기 순례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걸 찾아주는 것이다. 선생님, 저 어느 병원에 가면 되나요? 물으면 딱 답이 나온다. 

  

나는 약골이긴 하지만 건강검진을 하면 뭐 하나 부족한 거 없이 깨끗하다. 수치상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아프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당신은 멀쩡하다고 한다.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신경성이라고 하고 그래도 뭔가 해달라고 하면 온갖 검사를 해댄다. 드러나는 병명이 없다는 것은 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현대의학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나이롱 환자가 된 기분이다. 환자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 분명히 있는데 나중에는 스스로도 혹시 내가 꾀병인가 의심하게 된다. 

내가 도사님을 따르게 된 것은 어쩌면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에 속하고, 그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으니 측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서로 맞아떨어지는 일들이 생긴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런 도사, 또는 보이지 않지만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꼭 병을 낫게 해주는 도사가 아니어도, 도사님이라고 할만한 분야는 다양할 것이다. 요리의 도사도 있을 수 있고, 수제용품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도사도 있을 수 있고 진짜 도를 깨친 도사도 있을 수 있겠다. 도사든 달인이든 세상에는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들이 꽤 자주,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그런 게 어딨어, 과학적이지 않아, 라는 마음보다 세상에 그런 도사님이 있다는 것이 나는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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