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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y 27. 2022

아메리칸 레볼루셔너리

변화를 위하여!


그저 다른 할 일을 찾고 싶었다.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지만 5월 10일을 즈음하여 어쨌든 다른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위안이 될만한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신청하게 된 다큐 상영회. 7시 시작인데 나는 8시에 일이 끝난다. 거의 끝날 무렵에야 도착하겠지만 그날 갈 곳이 있다는 거, 그곳에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만으로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그날 영화는 10분 남짓 보았고 뒤풀이도 없어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굳이 챙겨보겠다는 의지는 없었는데 약간 본전 생각이 나서 신청했다.      

뻔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목이 아메리칸 레볼루셔너리니까, 그레이스 리라는 할머니 이야기라니까 영웅전 같은 느낌을 떠올렸다. 나는 별로 영웅 같은 걸 좋아하지도 않고 영웅 이야기에 진짜 영웅은 없더라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고 있어 큰 기대없이 플레이를 눌렀다. 그리고 혼자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시 되풀이해서 보고 또 보았다.      


폐허가 되어가는 건물 앞에 할머니가 서 있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되었다. 대규모 산업도시를 추구했던 사람들은 자동화 앞에서 대규모로 무너졌다.  

"너무 명백히 보이잖아요, 과거의 방식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몰락의 상징 앞에서 더는 작동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말이 허망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적이었다. 과거의 방식이 작동되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다른 것이 이루어지고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그는 뼛속까지 미국인이다. 아시안 여성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을 찾고자 하는 다큐 감독과 달리 그는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것도 여성이라는 것도 인식한 적이 없다고 한다. 흑인운동에도 여성운동에도 그 누구보다 기여도가 높지만 인종이나 계급, 젠더에 갇히지 않은 혁명을 말했다. 혁명에 대한 그의 통찰이 제대로 주목받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주목받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중국계라는 것, 여성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 진출이 상류층에게만 허용되는 시절에 대학을 다닐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철학을 공부하고 헤겔을 알게 되면서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전환점을 맞이하기까지는 평범했다. 헤겔은 모든 생각은 자기부정을 내포하며 고통스럽더라도 그 모순을 통과하는 것만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바로 변증법적 사고이다. 그걸 그레이스 리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생각에 머물지 말라는 겁니다.” 현실이 변하는 중이라는 걸 거듭거듭 깨닫고 계속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활동가가 된 것은 박사학위를 받고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면서이다. 자라오면서는 단 한 번도 흑인과 교류한 적이 없었지만 사는 처지가 나빠지면서 자연스럽게 흑인 공동체를 만나게 된다. 마침 군대와 군수산업 내 인종차별이 철폐되는 과정을 보면서 대규모 행동을 조직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놀라운 진리를 배우게 된다. 그때 평생 세상을 바꿀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마르크스주의자인 C.L.R. 제임스를 만나 비밀조직에서 일하는 등 적극적으로 미국의 혁명을 꿈꾼다.     


자동차산업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 여성 청년 흑인을 위한 잡지를 만들게 되면서 남편 지미를 만난다. 지미는 <미국 혁명>이라는 책에서 자동화로 미국 노동자 계급의 기반이 약화될 것을 내다보는 통찰력 있는 사람이다. 예상대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탈도시화가 시작되었다.

흑인운동이 막 시작될 무렵, 그레이스는 마르크시즘 공동체와 결별하고 본격적으로 흑인운동에서 피어나는 미국적인 혁명에 집중하기로 한다.

우선 여기서 그레이스의 유연함에 놀랐다. 비밀조직이 갖는 특성상 운동방식이 경직될 수밖에 없고 그 말은 곧 활동가 자신도 당연히 경직되고 은밀하고 대중적일 수가 없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정확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간다.  

                                 

그레이스는 흑인 운동으로 단지 인권운동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을 실현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흑인이 백인 중산층 수준의 지위를 얻는 게 혁명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흑인은 백인처럼 될 마음이 없다. 백인과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가꿔온 자기 자신과 동등해지려 한다."  

그러나 67년 흑인 반란을 보면서, 반란에 수반한 폭력이 어떻게 흑인사회를 자극하는지 알게 되었다.

“반란은 분노의 표출일 뿐 혁명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단순히 격분하는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위대한 무언가를 향한 진화를 해야 한다.”  

그들은 또 다른 인생의 변곡점을 겪게 된다. 그동안 자신들의 프로파간다가 폭력을 부추겼을 거라는 반성을 하면서 혁명에 대해 다시 고민한다. "인간이라면 더 위대한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인간에 대한 믿음과 성찰이 놀랍다. 좌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 한 번 이전의 운동방식을 털어내는 유연함이라니. 사실 꽤 오랫동안 혁명을 준비했고 소요를 겪어낸 것 아닌가. 그럼에도 오히려 본격적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혁명의 방법을 사유해가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레이스와 지미는 매년 여름 별장에서 가까운 이들과 긴 숙고의 시간을 갖는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구체적인 방법을 기획하고 피켓 문구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쉬었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다. 음악 휴식 춤 그것도 활동의 일부가 되었다.

아마 나는 이 장면에서 이들에게 가장 매료되었던 것 같다. 우리도 길게 토론하는 일들은 있지만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쉬지는 않는다. 더구나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감정을 고조시키기는 하지만 그것이 쉼을 위한 것은 아니다. 매년 여름 별장에 간다는 설정 자체가 어쩌면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노동자의 어려운 현실은 비슷하겠지만 쉼에 대한 인식은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대화를 중요시 여겼다. 특히 그레이스는 "급진주의에 몸담은 이들은 행동주의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깊게 생각하는 것의 중요함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한다. "대화란 생각의 한계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싸우고 울리고 반박하는 건 우리 문화와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이 절대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 대화 속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과거와 미래를 살피며 대화가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 우리와는 다른 듯하다.  

이미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정치색, 나와 다른 성적 지향, 나와 다른 가치관이라고 판단되면 담을 쌓는다. 일상에서도 담을 쌓고 알고리즘으로 더 담을 쌓고. 비슷한 사람들도 토론하고 넓혀가기보다 점점 세분화해서 담을 쌓는다.

일상에 대화의 장이 없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식탁에서. 각 잡고 하는 토론회조차도 일방적인 강의이거나 비난만 난무하다.

어떻게 대화의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레이스는 긴 시간 동안 많은 혁명을 목격했고 혁명으로 만들어진 국가가 그전의 국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목격한다. 그래서 혁명은 진화와 긴밀하게 엮여있어, 나와 세상 둘 다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 즉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디어 그레이스는 자신이 지미에게 맞설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남성 중심적인 운동, 남성의 뒤에 서있던 방식을 버린다. 개인의 삶에서부터 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 내용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그가 당사자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철학은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른다고 할 만큼 일반적인 여성의 삶과는 달랐고 당사자가 아닌 누구도 흑인의 삶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는 흑인이 아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흑인과 동일시하는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처럼 활동하기 위해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택하거나 또는 자녀를 거의 방치하게 되는 모습을 볼 때, 결국 여성의 삶을 부정할 때 여성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의 삶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해서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 삶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으로만 봐도 옳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레이스가 지미에게 어떻게 맞섰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시대적 한계를 생각해보면 기대만큼은 아닐 수 있다. 그가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은 남성 중심의 운동가여서라기보다 그레이스 개인의 특성일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기대한 지점, 여성으로서 여성의 삶을 살면서 동시에 혁명가라는 동지로서 맞선 것은 아녔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쉽다. 그럼에도 시도했다는 것, 주변의 여성들에게 좋지 않은 시그널을 주지 않기 위해 개인의 삶에서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그들 부부에게 서열이나 위계가 있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 자체가 너무 한국적인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반란 이후 디트로이트는 운동에 있어 선진도시가 되었다. 시민들에게 도시는 우리의 것이라는 의식이 생겨나고 혁명을 이루기 위해 활동가들이 일부러 찾아들어온다. 흑인이 시장이 되고 시의회 의장이 되고 그 힘은 점점 미국 전역으로 퍼져 흑인이 주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된다. 그 순간 모두가 환호하고 자유를 말할 때 그는 “구원자를 꿈꾸고 리더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는데, 다른 이에게 바라기보단 우리 자신이 우리가 갈망하던 수준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변화는 누굴 선출해주면 위에서부터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그랬다. 민주정부가 세워지고 많은 것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 활동가들이 대대적으로 정치 진출을 하고 지방자치를 꿈꾸며 지역으로 들어갔지만 지역 안에서 삶을 나누는 활동가가 되지 못하고 정치인이 되거나 다시 노동운동가가 되어버렸다. 촛불 혁명 이후 우리는 꿈꿨다. 혁명이 이루어질 것을. 하지만 대통령 하나 바꿔놓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버렸다.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조직해내고 요구를 모아내야 했는데,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위에서 당연히 해줄 거라 믿었다. 순진하게도. 게다가 우리는 점점, 이전보다도 더, 자본 중심의 세상에서 자신의 자본을 불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책임 하나 지켜내지 못했다. 주택공사 직원의 투기는 우리 주변의 소시민이다. 너무 많은 이들이 아파트 가격 오르는 맛을 알아버렸다. 누구도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고 국가적 가치를 세우지도 못했다.

 

디트로이트는 급속도로 황폐화된다. 자동차 산업이 외국으로 와르르 빠져나가면서 실업률은 늘었고 살인율은 높아지고 마약이 판을 친다. 흑인 정치인은 거대한 경제 시설이 경제 안정을 도모할 거라는 생각에 경제인들과 손잡았다. 자신이 보고 살아온 방식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더 이상 블랙 파워로 고조되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는 어떻게 지치지 않고 계속 희망을 잃지 않았냐는 질문에 “지난 55년간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도시를 황폐화하는 폭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모든 시도에서 배움을 얻으려 했다.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게 되었고 나의 성장은 이곳 덕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내가 살던 곳을 사랑했고 나의 성장은 그곳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어쩌면 나도 "빠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번아웃으로 이어졌"나 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살던 곳을 지키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 말이 꼭 장소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장소 뿐 아니라 많은 것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왔다. 일 다시 그곳으로 간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또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그레이스처럼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그레이스의 친구들처럼 함께 대화할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도 안다. 대화할 사람은 활동을 통해서 나타날 거라는 것을. 내가 먼저 대화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내가 떠나온 것과 별개로 지치지 않고 계속했다면 달랐을까 생각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이제 비폭력을 말한다. “비폭력은 왜 단지 수단이나 전략이 아니라 이다지도 중요한 철학인가"라는 그의 질문과 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이 느껴진다. "바로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비폭력은 모두에게 내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기회를 빚지고 있다.”

여기서 이웃들이 손을 잡고 둥글게 선 장면이 나오는데 순간 연대의 모습이 아니라 서로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한 손에는 칼자루와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는 중세 기사가 떠올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게 아편을 들지 않고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지방 소멸과는 비교가 안되게 급속도로 나빠진 도시의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 바닥이 아니구나 라는 두려움이 일었고, 바닥에 이르기 전에 먼저 새로운 운동의 방식을 이뤄가고 있는 그들에게서 연대와 연결을 배워야 할 텐데 하는 조급증도 생겼다.       


92년 그들은 디트로이트 서머라는 프로그램에 일조한다. 물질 중심 사회에서 사람중심 사회로의 이동이라는 국가차원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 변혁의 하나로, 무너져가는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직접 행동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신과 제도를 동시에 바꾸기 위한 시도이다. 폭력을 통한 혁명을 꿈꾸던 혁명가들이 이런 변화가 혁명 과정의 불가결한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모든 순간 변화하고 모든 순간 자신을 깨는 과정이다.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이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하는데, 프로젝트 장소로 왕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편리와 필요가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었다는 의미이다. 아이들도 말한다. 이웃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디트로이트는 이제 자본주의가 버리고 간 지역에서 어떻게 삶의 방식을 재건해나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도시재생사업의 모델이 된다. 처음에는 도시텃밭을 가꾸는 것이 어떻게 운동으로 이어지는 모르던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경험한 개개인이 리더가 되고 사상가가 되고 서로에게 너그러워지면서 스스로를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인지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보그스 학교를 세울 계획을 세운다. 그는 학교가 어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할지 상상하는 것부터 하라고 한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길은 걸으면서 만드는 것이니까.   


우리도 마을을 이야기하고 도시재생을 하고 있지만 목적이 다르다. 가치와 아젠다를 공유하고 아래로부터 절박함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프로그램을 가져와서 위에서부터 시행한다. 시민의 각성을 통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의 행정으로 진행된다. 제대로 될리가 없다. 또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스스로가 리더가 되는 게 아니라 올해 예산을 들여 성과를 내야하는 사업이 되어버린다.

시민의 각성. 시대적 아젠다. 선거라는 정치적 시간을 통해서조차 그걸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우리의 패착이다.

그레이스가 시간에 대해 말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그 말은 혁명에 시간이란 무엇이냐, 혁명을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 시대적 아젠다만 있다면 긴 시간을 바쳐 시민이 각성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혁명이 아니냐,  이런 말이 아닌가 싶다.

    

그레이스는 남편이 죽고, 아침으로 오트밀을 먹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겠다 마음먹는다. 루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혁명은 루틴이다. 루틴을 통해 상활을 안정화하고 반복을 통해 현재를 바꾼다. 어렵지만.

“사람은 결국 혼자 사는 데 익숙해져. 그가 있으면 좋겠어. 근데 없잖아. 이래서 인생은 계속 어려운 거야.”  

그는 나이 드는 것도 변화의 과정으로 본다. 얼마나 많은 자부심과 책임감, 두려움이 노화의 과정에 깃들었는지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도 계속 새로운 관계를 맺고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는가 의식하려고 한다.


그는 "지금 다시 변곡점이다. 우리는 사회에 새로운 제도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혁명가가 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도 새로운 상상을 해내야 한다. 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그 상상 중의 하나일 것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누려고 하는 것도 상상을 확장해가기 위한 노력이다.


디트로이트의 시장이 경제인들과 손잡았다는 장면 다음에 “이것이 역사가 사람을 바꾸는 방식이다. 낡은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릴 과거에 머물게 하는 관습의 힘은 강력하다.”라고 그가 말한다. 처음에는 그 시장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두 번 세 번 다시 영화를 볼수록 왜 이 말을 이 장면에 삽입했을까 아쉬웠다. 그 시장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밖에 못했을 것이다. 시대를 보지 못하면. 지금 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나는 점점 시대를 보는 것을 게을리했다. 귀찮았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했다는 마음이 몸을 나태하게 했다. 나도 낡아갔던 것이다. 혁명가는 아니지만, 인간의 진화를 믿는다면 조금 더 힘을 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의 일부로 늙어가고 싶지 낡은 채로 뒤떨어지고 싶지 않다. 다시,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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