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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y 30. 2022

브런치를 통한 제안

오케이, 컴온~

요 며칠 갱년기 글을 보고 제안을 몇 개 받았다. 브런치 제안을 통해 출판을 한 경험이 있는 나는 그런 제안인 줄 알고 뛸 듯이 기뻐하며 메일로 넘어갔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내용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인사이드라는 비대면 심리상담 어플이다.  

처음에는 내 글에서 상담의 필요성을 느꼈나 싶어서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갱년기가 흔히 그렇듯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힘든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글을 다 읽고도 이런 제안이 들어온다는 것은 아직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거절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전에도 상담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기억이 떠올라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세상일은 어떻게 또 연결될지 모르는 일이니 제안이 들어오는 건 가급적 하자 마음먹었다.     


앱을 열어 예약을 신청하면서 순간 당황했다.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뭘 써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고민 하나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그즈음 하기 싫은 일에 대해 적었다. 그리고 상담.   

역시 상담은 좋았다. 주요 상담 내용은 내가 쓴 내용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상담을 하는 내내 이제는 갱년기를 잘 지나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겨서 좋았다.

생각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바로 all or not이다. 뭐든 온 마음을 다해서 하고 아니면 아예 안 하는 성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님 말고 정신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허허... 사실은 전혀 아니었나 보다. 아니, 전혀라고 하면 또 all or not일 것이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그쪽에 가까운 게 맞지 싶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떠올려보고 그렇지 못하면 주저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인생 선배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첫째 행동하라, 둘째 행동하라, 셋째 행동하라... 그렇게 열 번째까지 그 말만 반복하셨다. 생각만 너무 많은 나에게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나는 그 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또! all이다) 무언가 떠오르는 즉시 움직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어느새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와 있는 걸 보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내 안으로부터 평가를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게다가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기까지 하니까 자꾸만 안 하는 쪽을 선택하는 거다. 물론 일부러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하나로 모았던 덕분에 나만의 일상이, 그것도 아주 만족스러운 안녕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바깥은 차단했는데, 라는 상담사님이 혼잣말에 아주 뜨끔했다. 이제는 조금 움직여보기로 마음먹었으니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많은 것들을 투명인간처럼 그대로 통과시켜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상담가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목표가 없는 것이 목표야. 그냥 해.  

넵~(아니, 아니. 10%만 그럴 게요)  


예전에 했던 상담에서 내가 건진 말은 '파일명을 바꾸어보라'는 거였다. 내가 나를 규정하는 말들을 바꾸는 일이다. 예민하다는 말을 섬세함으로 바꾼다든지, 소심하다에 전혀 다른 사례를 넣어본다든지 하는 거다. 이번 상담에서 건진 말은 '마음이 좋아지는 메뉴를 많이 만들라'는 것이다. 덕질을 하면서 꽤나 메뉴가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늘었다기보다는 같은 걸 자주 꺼내 들었던 것 같다. 이왕이면 메뉴가 많으면 좋다는 말에 완전 공감이다. 그래야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감정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실은 속상한 일을 어떻게 해결했냐는 말에 남편과 욕하고 웃는 걸로 해결했다는 답을 했다. 요즘 제일 신나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왜냐면 내편이 있다는 쾌감이 커서 같이 적당히 흉보고 끝에는 웃는 걸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건 내편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거라 다른 메뉴가 대체될 수 있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메뉴를 적어나가려 한다. 메뉴에 올려놓으면 나를 위한 시간 동안 나를 검열하는 것도 줄어들겠지. 나중에는 그 메뉴를 루틴이 되게 하면 더 좋겠다.  


상담에 대해 아주 오래전에 들은 말이 있다. 안전한 이웃이 있었던 예전에는 상담이라는 게 필요 없었는데 안전한 관계를 맺기 힘든 현대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을 주고 안전을 산다고, 그게 상담이라고. 너무 그럴싸해서 오래 마음에 남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들이 상담을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게. 하지만 그건 나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함께 이루어내어야 하는 관계의 문제이다. 또 우리 관계는 괜찮아도 때로 동시에 마음이 그늘지게 되면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한다. 이웃도 좋지만 힘들 때는 손 내밀어 잡아줄 무엇이라도 있어야 한다. 상담이든 어플이든 그게 뭐라도 잡아야 한다. 그런 안전망이 많은 것은 삶을 편안하게 해 준다.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니어도, 또 나처럼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도 2년에 한 번 건강 검진하듯이 마음건강을 체크해보는 건 나쁘지 않다. 마음 건강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괜찮은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침 어제 뫔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몸과 마음을 따로 분리하고 심지어 위계가 있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다르지 않고 어느 것이 더 위에 있지도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마음이 힘들다가도 몸을 조금 움직이면 금세 마음도 개운해지고 몸이 힘들다가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몸을 일으키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하면서 그 둘은 별개인 것 같고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마음을 중요시하면서도 몸이 아플 때 당장 병원에 달려가듯이 마음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몸만큼이나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돼, 쉽게 조절할 수 있다고 믿어버린다. 둘 다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가장 건강하겠지만 둘 다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고 보면 건강을 기본값으로 놓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부족하고 조금씩 고장 나고 조금씩 이상하다. 그래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조금 부족하고 이상한 그 부분이 정말 좋다. 남들에게서도 그 이상한 부분을 찾아낼 때 그 대상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낀다. 나 진짜 이상한가?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제안은 갱년기 어플을 만들고 있다는 젊은 여성에게서 왔다. 갱년기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제안이라기보다는 거의 내가 일방적으로 재능기부를 하는 일이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는 것 같아서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역시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오케이 했다.

갱년기 어플이라니 처음에는 좀 웃었다. 그런데 말하면 할수록 이게 대박적인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힘을 실어주고 응원을 해주었다. 나도 갱년기라는 시기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것을 바라고 글을 쓴 거니까.

거의 두 시간 혼자 떠들다시피 했는데 어찌나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지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아, 어쩌다 내 얘기 들어주는 젊은이가 이다지도 좋은 나이가 되어버렸는가). 그리고 내가 쓴 갱년기 글이 생각보다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는 내내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와서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다시 목차를 써 내려갔다(언제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둘을 엮어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갱년기도 뫔의 문제이고 상담도 그러하니 서로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그럼 나에게 오는 시너지는 뭐지? 음... 오지랖이겠지.

보고 계신가요? 관계자 분들~~ 알아서 좀 만나보시죠?





*아참,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나 원고료나 광고료는 받지 않은 순수 후기입니다~~ 별로 후기도 아닌 듯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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