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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02. 2022

코로나를 기록합시다


가끔 학부모 활동에 대한 강의를 한다. 코로나 이전에 했던 학부모 활동을 바탕으로 하기에 마지막에 코로나 시기에 꼭 해야 할 학부모 활동을 소개한다. 바로 코로나로 인한 아이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이다. 이 전대미문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아마 전문가들은 교육에 대한 이러저러한 대안과 대책을 내올 것이다. 그런데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학부모보다 훨씬 멀리서 아이들을 본다. 많은 데이터로 많은 연구를 하는지는 몰라도 학부모만큼 밀접하게 날것으로 보고 정확하게 변화를 인지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전문가보다 더 내밀한 기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학부모들이다. 내 아이건 남의 아이건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우려되는 일이건 그렇지 않은 일이건 아주 자세히 기록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낱낱이 기록해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올 수 있는 자료를 만들자고 당부한다. 그렇지 않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만 맡기면 이 중요한 시기에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지점을 놓쳐 잘못된 교육정책을 내올 수 있다. 이런 일은 우리들에게 모두 처음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길인 줄도 모르고 엄청난 예산과 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실수를 범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우리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이다. 전문가들이야 해봤더니 아니네, 하면 그만이다.   


비슷한 이유로 우리 모두 기록이 필요하다. 오늘 한 신문에서 칼럼을 읽었다. 코로나의 시간을 돌아보자는 이야기였다(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6020300065#c2b). 또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분들을 애도하는 온라인 공간이 열린다는 기사도 보았다. 병원에 격리된 채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가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들이 억울한 마음을 안은 채 슬프게 세상을 떠났고, 살아는 있지만 완쾌되지 못하고 크고 작은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당연히 이들을 위한 정책과 지원, 개선에 힘써야 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회복된 일상을 섬세하게 돌아보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상 회복이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정말 우리는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고 해서 과연 이전의 우리들일까. 재택근무를 마치고 돌아간 회사는 다시 이전과 같은 근무방식을 택해도 되는 걸까. 운동장에서조차 뛰어놀지 못했던 아이들이 다시 뛰어논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마음 상태일까. 마스크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내는 불편함은 점차 사라질까. 편하게 숨 쉰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이전과 같을까.


코로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는 코로나가 끝나면 전 세계적으로 두 달 정도 대대적인 축제를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때만 해도 위드 코로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위드 코로나든 단계적 일상 회복이든 조금씩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지금, 대대적인 축제 따위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제발 그런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대대적인 기록의 시간 말이다. #전세계인의코로나기록하기캠페인 이런 해시태그 같은 걸 달고 우리 모두가 겪은 코로나의 시간을 기록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돌아갈 회사를 잃고 누군가는 이전이라면 생각지 못했을 일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거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에 대해,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변화에 대해, 주변의 움직임에 대해, 심리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에 대해,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다양한 관계들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는 거다.    

전 세계인들의 대대적인 기록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과 가능성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살던 대로 살지 않을 수 있게, 리더라는 사람들이 대충 주물럭주물럭하지 않고 명백한 모두의 기록으로 충분히 데이터화하고 충분히 연구하고 충분히 토론해서 만족할만한 대안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나도 거기 한몫해야겠지. 이전이나 이후나 별 변화 없이 매일 글을 쓰고 매일 걷고 아주 가까운 이들만을 만나며 사는 지극히 내향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경각심이 부족한 나를 들여다보고 진짜 달라진 것이 없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언뜻 생각해도 몇 가지가 떠오른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응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덕분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고맙다는 말을 많이 쓴다. 친밀한 관계에 대해, 불필요한 에너지에 대해,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마음 쓴다. 더 다정해지고 더 걱정하고 더 이해하고 더 배려하려고 애쓴다. 이 '쓰는' 것들-말하고 마음 쓰고 애쓰고-에 이전과는 다른 진심이 담긴다. 쿨하려 했던 이전의 마음은 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알게 되었다. 잠시 멈추고 거리 두기를 하고 연결됨을 느끼고 무사한 하루하루에 감사함이 차곡차곡 쌓인다. 연결되지 못한 이들을 걱정하고 연민하고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신이 번쩍 나게 두려운 것도 있다. 인간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삶이라는 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모래성처럼 쌓아온 것인지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말이다.


잠깐 생각해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대대적인 기록을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드러날 것인가.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음악으로 또 다른 무엇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진짜 우리들을 기록해서 코로나를 인류 진화의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우리 기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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