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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y 24. 2022

꼰대가 티브이 보는 법


<어쩌다 사장>을 즐겨본다. 타인의 인생을 잠시 빌려서 살아본다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1편에서 시골 마을의 작지만 큰 점방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이 너무 정감 있었다. 그래서 2편이 시작될 때 커~다란 마트를 보고 저건 아니지, 이번엔 별로 보게 될 거 같지 않아, 하며 지레 물러났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 궁금했다. 기다리고 챙겨보면서 겁도 났다. 보기 시작하면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가버리니.

지난주에 영업 마지막 날이 방영되면서 그동안 그곳 주민들이 변화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아마 이번 주 말고 그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마지막 영업일이 가까워오면서 마을 주민들이 이런저런 아쉬워하는 마음을 표하는 걸 보면서 말이다.

연예인들이 아니어도 저렇게 좀 다정하게 살지......


연예인들을 만나면 반갑고 신기하고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그들이 내 이웃으로 살 것도 아닌데, 진짜 살갑게 살아야 할 사람들은 내 이웃인데... 그러고 보니 그들은 이미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소한 화면에서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 처음에 화천은 시골마을이고 작은 점방이라 그런 줄 알았다. 근데 나주 공산면은 뭐 그리 작지도 않고 마트도 거의 모든 것이 있는 대형마트 수준인데 어쩌면 그리도 주민들이 서로 잘 알고 살뜰히 잘 챙기고 정다운지. 게다가 맛집도 많고(원래 맛있는 건 다 지방에 있기는 하다. 왜냐면 도시만큼 프랜차이즈가 많지도 않아서 다양한 맛과 다양한 메뉴와 다양한 레시피가 살아있다. 지방은 도시에 비해 한번 자리를 잡은 가게는 꽤 오래간다. 경험이 많으니까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근데 왜 나는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을까. 아마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아서인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살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런 모습을 발견(!) 하지 못했던 것이다.

타인들의 눈으로, 특히 연예인 들으러 보면 일반인의 일상에는 그동안 티브이가 보여주지 않았던 삶의 정수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그걸 우리는 연예인의 눈을 통해 티브이로 발견한다. 참 따뜻해, 참 편안해, 참 다정해, 하면서.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모습인데 자꾸 그걸 잊는다. 그럼에도 부러웠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이. 아마 그들도 놀랐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서. 덕분에 관광객도 늘었다는데 일시적인 인기로 끝나지 않고 관광이 죽 이어졌으면 좋겠고 주민들 간의 끈끈함도 계속되면 좋겠다. 상가번영회도 더더 늘어나 진짜 번영했으면 좋겠다. 우린 원래 이렇게 살아, 이렇게 다정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고 부지런히 살아, 자부심 가졌으면 좋겠다. 지방의 장점이 많이 알려져 서울 말고 지방도 충분히 살만하다는 것을, 오히려 더 사람 살기 좋다는 것을 많이들 알았으면 좋겠다. 많은 경우 지방에서도 오래 살아온 토박이들이나 소를 키울 땅이 있고 정보가 있고 자영업도 자리잡기가 좋지 외지인들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유동인구가 적고 단골을 잡기도 어렵다. 하지만 서울만 하랴.   


삐딱했던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찰랑찰랑 부드러움이 채워지게 해 줘서 고맙다. 벌써 3편을 기다린다고 하면 너무한 거지?





큰 기대 없이 보다가 행복해지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두근두근 기대를 안고 보다가 점점 다른 데로 돌릴까 망설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평범함 사람들의 훈훈한 로맨스를 가장 잘 다루던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모두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덮어놓고 좋아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출연진부터 초호화 라인업이어서 <디어 마이 프렌즈> 같은 인생영화가 탄생하리라 믿었다.


원래 믿는 도끼에는 발등이 찍히는 법이다. 첫 방영부터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연기를 너무너무 잘하는 이병헌 때문에 좋았다. 그의 연기만 봐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제주도 방언을 그대로 대사로 쓰고 자막을 단 것만 봐도 역시 노희경, 이라는 감탄이 나오지 않는가. 진짜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를 데려다 써버리지 않는가. 그가 아니면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하고 실현해버리겠는가. 하지만 자꾸만 노희경이,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가, 우리들이 환호했던 시절이 저무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참으로 가슴 아프다. 이래서 나이 먹으면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아니, 사실 나이 먹어서 대작가가 되는 이들도 많은데 우리의 노희경은 그냥 범인에 머물려나 보다. 그걸 보고 있는 게, 마치 범인인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범인도 못 되는 더 작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 뭘 그리 욕하냐고 하겠지만 원래 티브이는 욕하면서 보는 거다. 유희열이 그랬다. 라디오는 감사하면서 듣고 티브이는 욕하면서 본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진짜 그러더라.

암튼 어차피 욕한 거,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인권과 아들 현이가 화해하는 장면 말이다. 인권이 아들 현이에게 말한다. 아방이 쪽팔려? 너한테 쪽팔리지 않게 살려고, 너 하나 잘 키워보자고 이 창고 같은 곳에서 피비린내 맡아가면서 어쩌고. 너한텐 하늘을 우러러 잘못한 게 없다고, 너는 이 세상 어느 거보다 자랑이었어 저쩌고... 아방의 울부짖음에 현이 잘못했어요, 아방을 끌어안고 뉘우친다.


하, 이거 나만 이상한가. 이런 신파가 어딨냐고. 자기 인생을 왜 자식에게 쪽팔리지 않게 사냐고, 자기 스스로 쪽팔리지 않으면 되지. 자식이건 누구 건 남이 쪽팔리다고 여기면 달리 살 거냔 말이다. 솔직히 인권이 그동안 깡패로 살다가 개과천선을 했으니 스스로 대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준 인권의 행동은 여전히 깡패 같은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자식에게만이 아니라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당연히 쪽팔릴 수 있지. 자식은 더 그럴 수 있지. 그럼에도 그 말을 한 것은 잘못이긴 하다. 상처 주는 말이니까. 하지만 상처주기는 인권이 훨씬 심했고 그 와중에도 현이는 많이 참았다. 한 번은 부딪히고 깨져야 하는 부분이니 결과적으로는 잘한 거다. 하지만 현이가 잘못했어요, 로 끝날 게 아니라 인권이 현이에게 미안하다, 로 끝났어야 했다. 항상 자식은 잘못하면 안 되고 부모는 자식에게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결국 인권이 호식에게는 사과하지 않나. 거기까지는 되는데 왜 현이에게 사과하는 건 안 보여주냔 말이다. 이런 데서 노희경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해방 일지>에서 나오는 나를 추앙해요, 라는 대사도 못 들어주겠다. 한 번은 채워지고 싶다니, 자신이 채워야지 남이 추앙하면 그게 채워질까. 원래 나는 엄살이 많은 사람이라서 남의 엄살은 닭살이 돋는다. 애초에 미정의 결핍이 그다지 공감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대부분 완전 공감된다는데 나만 왜 공감을 못할까. 이래서 대중적인 작가가 못 되나 보다ㅠㅠㅠ). 그래도 드라마니까, 또 인간은 어느 정도 엄살을 부리니까 조금 과한 설정이라도 봐주고 그다음을 봐야 하는데 나는 그걸 못 넘기는 것 같다. 그 뒤로도 엄청난 명대사들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제 그 드라마는 내 관심을 벗어나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티브이를 보니까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스로 정말 꼰대인가 봐, 를 되뇌며 그럼에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목구멍에 걸려 글로 남기기까지 한다. 아예 꼰대의 글쓰기로 나서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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