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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란 무엇인가

학부모 회의를 하기 전에

by 천둥


학부모회에서 해야 하는 회의는 어떤 것일까. 그전에 회의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정확히 짚어보자.

일반적으로 회의란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듣거나 하나의 의제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조율을 하는 자리이다. 우리는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1. 회의 구성 등 사전 작업을 하고, 2. 하나의 의제를 만들어내어 그것에 대한 다양한 논의 과정을 거치며 3. 실행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은다. 4.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책임자를 찾아 일을 맡기고, 5. 실행한 후 결과보고와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이 회의이다. 그런데 의제를 만드는 과정 없이 아이디어만 받는다든지 인준만 거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결과보고와 평가를 하지 않는 경우도 너무도 많다. 운영위원회에서도 대체로 그러하다.


위의 5가지 회의 방식을 하나씩 점검해보자.

1. 하나의 의제를 내오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이런 과정을 건너뛴다. 이미 합의된 내용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그런 사전 합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다르게 이해하거나, 세월이 흘러 그 목적이 모호해져 있을 때도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목적은 아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키우는 교육에 있고 그것을 교사라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7차 교육과정 이후 교육의 근본적인 관점이 달라졌다. 학교 구성원만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 구성원 모두의 협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한 이해와 논의 없이 기존대로 기관의 운영에 대해서만 논해서는 곤란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구성원과 회의를 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 작업은 '서로의 이해와 신뢰를 쌓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삶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교육주체이면서 교육전문가는 아닌 학부모들의 '말'이 교육적 언어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맥락 찾기가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급 학부모회의는 회의보다 신뢰 서클*이 중심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진 후에 교육에 대한 의제를 선정해도 늦지 않다. 아니, 서로의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하나의 의제가 될 수 있다.

학교에 대한 기대, 학급에 대한 기대, 각자의 교육관, 지역적인 문제의식, 교육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 교육을 위해 성취해야 할 내용과 과정 등등에 대해 선문답 하듯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2. 사전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나면, 하나의 의제로 의견을 모으는 회의를 할 수 있다. 적극적인 토론과 근거, 반박, 협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 회의를 말한다. 회의라기보다 어쩌면 공부라고 해도 좋을만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학교에서는 운영위원회에서 토론할 의제를 내와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한 학교라면 학년 학부모회나 교육과정위원회 등의 소위원회를 통해 토론대회를 열 수 있다. 교육청에서 얼마 전부터 각 학교마다 교육대토론회를 열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교육적 의제를 만들어 깊이 있는 토론문화를 만들어가라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대표적으로 교칙에 대한 토론을 들 수 있다. 다만, 교복을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머리 염색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의 지엽적인 내용에서 좀 더 근본적인 논의가 선행되면 좋겠다. 학생 다움이란 무엇인가, 학생의 자유란 무엇인가, 학생의 자유는 어떻게 얻어질 것인가 등으로 변환해내는 것이 운영위원들의 할 일이다.


3. 실행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회의는 대표적으로 각종 소위원회, 각종 동아리 등에서 많이 한다. 또는 특별한 행사 때 많이 한다. 교칙으로 비유하자면, 교칙을 어길 시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부모회의는 여기에 속해왔다. 축제 협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체육대회 협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학부모 동아리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1, 2번의 과정을 생략하고 진행하는 학부모 회의는 많은 학부모들을 지치게 했고 소모시켰고 소외시켰다. 그마저 3번에 해당되면 다행이고, 4번에 해당되는 경우도 많았다. 3번까지는 교사들이 하고, 4번 실행만 학부모에게 맡긴 경우도 많다.


4. 학부모회의에서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역할분담의 문제는 간단치 않다. 누가 하더라도 말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면 학교에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고, 안 하면 학교에 밉보이게 될까 봐 아예 참여조차 안 하는 것이라, 구설수에 오른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들이 아예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기 위해, 학교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다 같이 함께 하고 최대한 누가 하는지 모르게 하라. 다 같이, 그러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정하고, 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정하고, 누가 했는지 학교가 모르게, 또는 학부모 스스로에게만 의미 있게, 그 영향이 학생에게 가지 않도록 한다. 이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가가 관건이다. 이 또한 학부모회의 의제가 될 수 있다. 한 번쯤은 깊이 있게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특히 임원들에게 필요한 의제이다. 그래서 학부모회 활동을 하는 동안 누구의 엄마로 활동하기보다 학부모 활동가 아무개로 불리는 게 좋다.

그러나 이제 학급 학부모회의에서는 이와 같은 실행과 역할분담에 대한 회의는 당분간 사라졌으면 좋겠다. 학부모회의는 서로 안전감을 확보하는 교육 공론장으로 남아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곡해 없이 의도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안전감이 우선이다. 그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논의는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5. 결과보고와 평가는 학교에서 현재 학생에게만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는 운영위원들이 반드시 챙겨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사실 모든 회의 구성 안에 이 부분이 하나의 보고 단계 속에 들어가야 한다. 회의록을 통해 점검되어야 한다. 다만, 잘잘못을 따져 개인적 책임으로 결론짓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평가를 하는 이유는 배움을 위해서다. 결과보고와 평가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이고, 무엇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학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다. 모든 구성원이 배우고 익히고 실수해도 받아들여져야 한다.


회의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하고 나면 어느 단위에서 어떤 논의를 해야 하고 어떤 흐름으로 이어가야 하는지 좀 더 분명해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학급 학부모회의에서는 우선 이해와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년 학부모회에서는 폭넓은 의제를 토론할 필요가 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의제를 내오고 평가를 잘 해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 회의록을 꼼꼼히 만드는 것이 좋다. 회의 마지막 단계에서 반드시 회의기록을 공유하고 동의받아야 한다. 학부모들은 교육적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한 줄 한 줄 함께 정리하다 보면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회의록이나 회의자료, 회의 일시 등은 공개하여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어서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학부모들에게 언제든 참여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좋은 민주주의의 교육적 본보기가 되도록 말이다.

학부모 운영위원들은 이 모든 회의록을 꼼꼼히 살피고 필요한 내용을 운영회의로 가져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하부단위인 학부모들의 논의가 운영위원의 게으름으로 무용해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신뢰 서클이란, 모둠별로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임이다.

'내면이 말하는 진실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깊은 목소리를 듣게 됨으로써,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새롭게 이끌어갈 내적 용기를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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