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가라

등산일지 쓰기엔 너무 초보이지만

by 천둥

지난주에 산에 다녀온 후, 충동적으로 매주 토요일 산에 오르겠다고 인스타에 선언해 버렸다. 아주 충동적인 건 사실이지만, 모범생에 가까운 내 성격상 선언한 이상 안 할 수가 없을 거라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토요일, 산에 올랐다.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오늘 아침 일과는 등산이라고 내 몸이 받아들였다. 역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은 루틴으로 만드는 게 최고다.

갑작스러운 산행은, 그러니까 지난주에 산에 가게 된 것은 오로지 덕주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나가라

꿈에 관한 어떤 공연에서 나의 덕주 하현우는 꿈을 이루고 싶거나 꿈이 무언지 모른다면 일단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물리적으로 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말이기도 했다. 맥락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측면에서 나도 다르지 않았다.

올해 들어 약간 슬럼프 같은 게 왔다. 몇 년에 걸쳐 글쓰기를 해오면서 꽤 즐거웠다. 하나를 쓰고 나면 또 하나가 나타나고 또 하나를 쓰는 중에 새로운 소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글쓰기가 계속되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써야 할 것을 쓰고 있는데, 이상하게 책상에 앉기가 힘들었다. 앉아서도 쓰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많았고 무엇보다 즐겁지가 않았다. 며칠 동안 씨름을 하다가 과감히 덮었다. 너무 버거운 주제를 잡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핑계를 대다가 몇 년 동안 계속 썼으니 잠시 쉬는 것도 필요하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아무거나 다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어서 나는 좀 외로워졌다. 마침 한 출판사에서 동화를 써달라는 요청이 왔다. 어쩔까 잠시 망설였지만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림책작가가 되겠다고 시작한 작가의 삶이지 않은가. 어쩌면 동화를 계기로 그림책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동화를 붙들었다. 그렇게 두 개의 동화를 쓰고 다시 탈진했다.

지나치게 각성 상태가 유지되면서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소화도 안 되고 수면장애가 왔다. 안 되겠다, 쉬자. 쓰고 싶은 동화가 하나 더 있지만 급하게 써야 할 동화는 썼으니 쉬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잘 쉬는 것도 능력인데,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뭘 하면서 쉬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 계속 책을 읽었다. 덕질을 하면서 나를 돌보는 일에 조금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 못했던가 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고 책을 읽으면 피곤하고를 반복했다.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뭘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딜 간단 말인가. 집순이로 산지 어언 수년 째고, 만나자는 친구는 있어도 만나기 한 시간 전 취소하고 싶은 극한의 내향인인데. 며칠을 방황하다가 산을 떠올렸다. 인생에 음악과 산 말고 아무것도 없다는 덕주 덕분이다.

지난주에는 찬기운을 밀어내는 봄바람이 가끔 불어오는 것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봄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주일 사이 완연한 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노란 생강나무가 가지를 뻗어 반겼고, 물이 올라 연두연두한 빛들을 가득 품은 나무들이 한들거리고 있었다. 기온도 훌쩍 올라서 산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겉옷을 벗어 허리에 묶어야 했다.

찬찬히 알뜰하게 누리고 싶은데 봄은 성급하게도 서둘러 다가온다. 어쩌면 봄이 다가오는 게 아니라 겨울이 도망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봄은 그저 준비된 자에게 오는 기회 같은 걸지도.


‘찬찬히’ 봄을 보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 웬일로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몸이 달려 나갔다. 그럴 땐 몸을 따라줘야 한다. 괜히 속도를 늦추다간 리듬을 잃을 수도 있다. 앞사람들을 성큼성큼 따라잡고 쓱쓱 앞서갔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아버지가 내 앞에 있었다. 남자아이는 살짝 파마한 머리가 산뜻하니 아침부터 샴푸까지 말끔하게 한 듯하다. 운동화도 새로 산 듯 깔끔하고 트레이닝복도 어깨부터 팔까지 날이 선 것을 보니 새것이다. 아이답지 않게 아주 반듯한 자세로 걷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앞장서 걷고 있고 아이가 뒤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마치 벌을 받는 것 같다. 너 이번에 원하는 성적 안 나오면 아버지 따라 산에나 다니자, 그랬을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와 산에 다닌 적이 있다. 학교 가기 전에 아침마다 산에 올랐다. 산이 가깝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잠마왕이었는데. 아침산행의 상쾌함을 알았던 것 같다. 바위틈을 날쌔게 오르고, 나무를 잡고 폴짝 뛰어내리던 순간의 쾌감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들을 제치고 앞서가자 과묵하던 아버지가 아이에게 겉옷을 벗겠냐고 묻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응, 답한다. 혼자만의 상상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돌아보고 싶은 걸 참고 앞을 보고 걷는다. 어떤 이유였건간에 산에 왔으니 내려가는 길에는 아이가 웃기를 바라며.


다시 일행인 것 같은 사람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꽤 여럿인데 다 일행 같다. 두서너 명씩 짝을 지어 두런두런 얘기 중이라 먼저 갈게요, 하는데도 못 듣고 비켜주질 않는다. 발을 재게 놀려 얼른 앞으로 갔다. 칠순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라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벽부터 올라와 정상을 밟고 이미 내려간 사람도 많겠지. 누군가가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또 누군가가 오르는 곳. 서로의 발걸음이 섞이고 섞이는 곳. 아무도 먼저를 생각하지 않는 곳. 계절처럼.


팽나무라고 써 있는 팻말이 있다. 뽕나무가 뽕하고 방귀를 뀌고 팽나무가 팽하고 돌아섰다는 바로 그 팽나무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계속 팽나무가 보였다. 이 근처는 팽나무 군락지라는 것까지 알겠다. 다른 팻말도 있었는데 보지 않았다. 한번에 하나씩만 외워야지. 그렇게 이 산의 나무 이름을 몇 개라도 기억해야지.

드디어 약수터. 여기가 내 목표지점이다. 정상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정상에 오른 사진을 올릴 일은 없을 것이다. 체감상 지난주에 비해 훨씬 빠르고 가볍고 오른 것 같아 조금만 더 오를까 하고 내처 걸었다. 아까 제치고 왔던 어르신들이 아까와같은 보폭과 텐션을유지한 채 올라오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실까?어쩌면 나와 달리 정상까지 가실지도 모른다. 꼭 그러셨으면. 아니 꼭 그러지 않으셔도 되지. 무슨 상관인가.

한 백 미터 올랐나? 다리가 무거워졌다. 역시 몸을 움직일 때는 마음을 믿으면 안 되는 거다. 어제 읽은 요조의 <만지고 싶은 마음>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보통은 마음이 몸에게 말하지만 달리기는 몸이 마음에게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아무리 마음이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말해도 몸이 아니라고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거라고.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고.


한번 무거워진 다리는 다시 가벼워지지 않았다. 내려오는 내내 허리가 굽어졌다. 평소 바른 자세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라 지극히 의지의 영역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오랜만에 먹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무너지 의지가 또 다른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점심메뉴가 떠올랐다. 새콤하게 무생채를 무쳐서 비빔밥을 해 먹어야지. 이왕이면 콩나물도 무치고 호박도 볶을까. 역시 몸을 움직여야 몸을 돌보는 법이다. 나가길 잘했지. 다음 주도 당연하게 등산해야지.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