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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12. 2023

논객 유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그들을 이해해 주어서는 안 된다!

유시민을 좋아했다(과거형이다. 왜 과거형이 되었는지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알쓸신잡> 등에서 ‘말하는’ 유시민이 좋았다. 그런데 최근 그가 이제 그만 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히 내가 유시민을 언급하는 게 웃기기는 한데, 더구나 정치에 대한 글을 써본 적도 없고 오히려 이전보다 정치를 외면하고 있는 내가 유시민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언급한다는 게 몹시 주저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유시민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그저 한 마리 새우젓 같은 덕후로서 말한다면 말이지) 한마디 언급할 수 있는 거지 뭐...          


그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좋았다. 남들이 기대하는 삶(정치가)보다 개인으로서 만족스러운 삶(작가)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의무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짐을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정치적 능력이 뛰어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명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이제 그 사명감을 다했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더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그에게 정치가 되기를 바라거나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은 다했으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하시라”고까지 했다. 이렇게 콕 짚어 선을 긋는 말 또한 내가 그를 좋아하는 포인트다. 게다가 정치판에 있어본 사람으로서 나름 유혹이 있을 텐데도(반대로 괴로움도 잘 알겠지만) 끝내 자신의 선택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최근 그의 신작이 나오면서 여기저기에 책 홍보를 하러 다니는데, 정치색이 강한 매체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물론 정치에 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언급할 수는 있는데, 우리가(아니 내가) 그에게 바라는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여기서 또, 내가 감히 라는 자기 검열이 올라온다. 좀 더 용기 내어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얼마 전 한 정치 유튜브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회자가 이만저만한 나라 걱정을 하니까, 그가 “나라 안 망해요”라고 단언했다. 아직은 야당국회의원 수가 많아서 법으로 바꾸지는 못하고 대통령 시행령 정도만 바꾸는 거라서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고 했다. 사회자는 아, 그러냐고, 그럼 참 다행이라고 말을 받았다.

저출생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비슷한 취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인구수로 국가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니 걱정인 거지,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좀 줄어들어도 된다고, 태어난 사람들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감동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걱정도 하고 대책도 세워야 하는 거 아닌가.

또 사회자가 대통령이 일관되지 않다고 했더니 그는 아니라고, 아주 일관된다며 특유의 촌철살인을 던졌다. 그러면서 살려고, 병에 걸리지 않고 살려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거고, 애쓰다 보면 이해 못 할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나도 언제나 이해해야 하는 생각형 인간으로서 그의 방식이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빴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자꾸 이해시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그럼 누가 걱정하고 누가 문제제기할 수 있는가.      

정치색이 강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보수화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정치전선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유시민에게 보수화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물어가는 세대가 점점 안정을 바라고 보수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유시민도 나이가 들었고 이전에 비해 보수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자신도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나이와 상관없이 청년정신으로 정치를 해가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불굴의 정신으로 스스로를 갈고닦았을 때에야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고, 함부로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서는 안 된다. 잘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시민을 주저앉혀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할지라도 말이다(다행히 청취자들은 기존 프레임을 벗어나는 쪽으로 이해한 듯하다).


그때 우연히 정희진의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의 한 문장을 읽었다. 그에게 이 문장을 전하고 싶다.

“왜 때리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폭력이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때릴 수 있으니 때리는 것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대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그들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럴 수 있으니 그러는 것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그럴 수 없게 해야 한다. 왜 사회는 약자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넘기도록 가만히 두는가. 물어야 한다. 스스로 묻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묻고, 정치인에 물어야 한다. 국가에 물어야 한다.      


쓰다 보니 나는 여전히 유시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하지 않으면 애정을 가지고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 다만 이제 그가 정치 유튜브는 나오지 말고 시민 유시민으로서 살든가, 치열한 정치적(!) 논객으로 살든가 다시 고민했으면 좋겠다.      

모름지기 덕후라면 그가 뭘 하든 좋아하고 지지해주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유시민의 덕후까지는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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