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로 예술하기 1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으로 보는 덕후 생활 고찰

by 천둥
교양의 다양한 면면과 아주 가까운 곳에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길 또한 많습니다. 어떤 행복이 있는지 알아볼까요?...(중략)... 역사적 인식을 향해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주는 책을 읽을 때 느끼는 행복, 다른 곳에서는 인간의 삶이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안겨주는 감동, 자신의 경험을 자신만의 방식과 언어로 느낄 때의 황홀한 기쁨, 어느 한순간 자신의 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게 되었을 때의 신선한 행복, 그동안 달려오던 궤도에서 이탈해 내면의 모습을 바꾸고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때의 느낌을 일궈냈을 때의 해방감, 사회적 상상력을 길러 도덕적 감수성에 관한 자신의 내적 지평을 넓혔을 때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경험 같은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39p


어떤 덕후들은 일본 필리핀 미국 등지까지 따라가 공연을 본다. 앨범과 굿즈를 사고 직접 만들어 공구를 하기도 한다. 고성능 카메라를 사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올리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 아예 그 길로 진로가 바뀌기도 한다. 덕주를 롤모델 삼아 음악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이들을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한다. 덕후라면 누구나 성덕이 되기를 바라지만 성덕은 아무나 하나. 성덕이 아니어도 덕질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뭐든지 해본다. 합작으로 글을 쓰고 사진 짤을 만들고 노래를 커버하고 그도 아니면 트잉여(트위터를 많이 하는 잉여인간)가 되어 피드를 덕주 이야기로 채우기도 한다.


음악을 듣다 보니 나도 뭔가 음악적 행위를 해보고 싶어졌다. 음치에 박치라 최대한 쉬운 것을 찾아보다가, 우쿨렐레를 배우게 되었다. 가볍게 노래에 반주하는 법 정도라고 해서 시작한 건데, 평소에 음악을 전혀 안 듣던 나는 아는 노래가 없었다. 들어보면 알 거라고 하지만 매번 아니, 이 노래도 몰라?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음감 없는 내가 모르는 노래를 익혀가며 배우는 게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친구가 우연히 연습 장면을 보더니 박장대소를 했다. 너처럼 뻣뻣하게 치는 사람은 절대 익힐 수 없어, 라며 뼈 때리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열심히 연습했고, 익숙해지고나면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국 1년 만에 친구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말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수준이었다. 칫, 음악이 안된다면 그림으로 도전해보리라!


미대 오빠(잘 생기면 다 오빠니까!)였던 덕주는 앨범 재킷을 직접 그리고, 멤버들이 입는 옷도 그리고 앨범을 낼 때 찍는 사진의 배경도 직접 그린다. 그러니 내가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덤비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내 그림은 유치원 아이들과 비교해서도 절대 밀리는 졸라맨 수준이다. 너무 기초가 없어 학원에 갈 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배우려고 물어보니 일단 혼자 낙서라도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그래,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으니까, 따라 그려 보자. 하지만 유튜브조차 그림을 좀 그려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나처럼 맹탕인 상태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그때 어떤 분이 혹세무민 하는 소리를 했는데, 하루 한 점씩 석 달만 그리면 누구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저거다. 나 같은 무지한 백성은 바로 넘어갔다. 무조건 100일 100 그림에 도전하기로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내게 딱 맞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연필을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그려야 할지 몰라 방황했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아무거나, 보이는대로 그렸다. 아무데나 내 마음대로 시작점을 찾아 그렸다. 그렇게 열흘쯤 지나니까, 사람이나 사물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되고 그러면 내 눈에도 달리 보이는 부분이 조금은 생겼다. 무엇보다 혼자 하니까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일이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덕심으로 시작한 그림이니까 덕주를 그리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보이기도 그리는데 이상하게 덕주만큼은 전혀 닮게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내가 아는 불경스러움은 어쩔 것이냐 싶어 당분간 덕주는 포기했다. 대신 나만의 굿즈를 만들었다. 청바지에 팬들만 아는 상징적인 그림을 그려넣거나 핀버튼을 만들어서 가방에 덕지덕지 달았다. 심지어 덕친에게 선물도 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주셔서 내가 다 감격스러웠다. 공연을 갈 때 내 차림새는 이렇다. 가사를 써넣은 청바지와 로고가 그려진 흰셔츠를 입고, 싸인이 그려진 키타피크 목걸이를 하고, 또다른 가사를 써넣은 손수건을 팔에 두르고, 또다른 로고를 그려넣은 모자를 쓰고, 로고를 다양하게 그려넣은 핀버튼이 가득한 가방을 든다. 완전 움직이는 광고판 수준이다.


졸라맨을 벗어난 정도일 뿐인데,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에 자꾸 자랑이 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보여주면 코웃음만 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해주었다.(그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뻔한 그림을 자꾸 보여줄 수가 없어서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나와의 약속으로서 1일 1 그림 업로드를 했는데 지속성을 가지게 되어서 좋았다. 실제 그림보다 사진이 그럴듯하게 찍히니까 팔로가 느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석 달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지금은 3년 차가 되었다. 꾸준함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덕후에게 그리고 싶은 덕주만큼 강력한 동력이 뭐가 있겠는가. 여전히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이제 가끔 내 덕주를 그려본다. 남들도 누군지 알아본다! 덕주를 욕보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이 모두 예기치 못한 경험이고 기쁨이다.


문학을 읽는 것은 영혼의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문학 독자는 같은 것을 놓고도 이전과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사랑과 다른 미움을 배웁니다. 영혼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새로운 말들과 새 은유를 배웁니다. 구사할 수 있는 단어와 개념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자기가 겪은 경험을 세분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이는 뒤집어 말하면 사건을 더욱 세밀하게 분화시켜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28p


페터 비에리 님의 말처럼, 문학뿐 아니라 예술은 영혼의 영역이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 영혼의 속살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내가 매일 내 영혼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예술을 하는 덕주의 감정을 잠시라도 느껴본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소중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공연을 할 때 무대 뒤로 영상이 띄워진다. 그 음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좀 더 분명하게 이미지화해서 전달해주는 것인데, 영상, 그러니까 그림에서 그들 영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가 있다. 그전에는 가삿말과 악기가 하던 말을 각각 알아들었다면,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에는 영상과 함께 3D의 형태로 느낀다. 세밀하게 분화시켜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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