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어디까지 해봤니 1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으로 보는 덕후 생활 고찰

by 천둥


교양을 쌓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연히 특정한 종류의 호기심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내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지역과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다른 기후 환경에서 자라났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다른 직업을 가지고 다른 사회계층에서 성장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봅니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어집니다. 여행을 그동안 불편하게 느꼈던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경계선을 넓히는 계기로 삼고 싶어집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24p


다른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음악은 어떨까. 다른 시대였다면, 다른 장소라면 어땠을까. 호기심은 관심의 영역을 넓히게 되고 그동안 단절되었던 시선의 확장을 끌고 왔다. 국카스텐만 듣고 국카스텐만 보는 것에서 나아가 다른 음악도 들어보기로 했다. 라디오헤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좋았고 이매진 드래곤스를 들었다. 이왕이면 고개 처박고 달려가는 덕질을 하기보다는 여행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 구석구석 다녀보자 마음먹었다.

록 페스티벌을 온전히 경험해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국카스텐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갔었는데 국카스텐이 나오지 않는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 그들이 나오면 내 의지대로 체력 안배와 감정적 안배가 되지 않을 테니까.

생전 처음 보는 밴드의 음악에 몸을 맡겼다. 아주 가뿐하게 놀 수 있었다. 아무런 무게감 없이. 희로애락, 미움과 슬픔, 기쁨과 좋음, 그 어느 것도 없는 상태로 바라보아도 되는 대상은 내게 아무런 무게감을 주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이러한 것인가. 감정의 소모가 하나도 없다. 또한 감정이 채워지지도 않는다. 감정을 비울 필요도 채울 필요도 없으니 이렇게 가볍거늘 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달파하는가. 설렘과 떨림과 기대와 불안, 온갖 번뇌 속으로 내발로 뛰어들어가는가. 인간은 고통을 느껴야 사는 감각의 존재인가. 득도한 이들이 누누이 말하는 공空의 경지를 재미없어하니, 한심하도다. 그럼에도 휘몰아치는 격정을 느끼기 위해 그리도 질긴 인연을 만들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야 살아있는 것 같으니 어쩌랴. 그래. 기꺼이 사랑하고 기꺼이 미워하고 마음 졸이며 살아가련다.

보면 볼수록 내 덕주가 그리웠다.

홍대로 인디밴드를 보러 갔다. 국카스텐도 처음에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했다. 그때의 분위기를 알고 싶기도 했다. 국카스텐 공연을 보다가 알게 된 모브닝이라는 팀이 기억에 남아서 그들의 공연 일정에 맞춰 길을 나섰다. 몇십 년 만에 오게 된 홍대. 내가 홍대를 와보다니, 그것만으로 괜히 마음이 들떴다. 공연장소를 몰라 헤매고 있는데 앞에 기타를 맨 청년이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한번 따라가 보자 했는데 마침 그 청년이 내가 못 찾던 그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알고 보니 모브닝의 베이시스트였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와 식당에 갔다. 밥을 먹고 있는데 모브닝 멤버들이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뮤지션을 이렇게 가까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사생팬(죽자사자 쫓아다니는 팬)이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다.

내가 공연을 본 후에 모브닝은 티브이에도 나오고 인기도 꽤 높아졌다. 내심 뿌듯해는데 갑자기 멤버들이 군입대를 했다. 살짝 현타(현실 자각 타임, 현실을 깨닫게 된다는 뜻)가 왔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홍대 공연장을 기웃거렸다. 관객이 너무 적다 보니 어느 순간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뮤지션을 응원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게다가 뮤지션과 눈을 마주치는 게 나는 부담스러웠다. 어떤 덕후들은 덕주가 자신을 알아봐 주고 기억해주길 바란다는데, 나는 덕주가 신의 경지에 있는 편이 좋았다. 쉽게 만날 수 있는 덕주라니, 그건 누추한 장판 바닥을 랜턴 플래시로 비추는 것 같지 않은가. 그저 눈에 띄지 않는 새우젓 한 마리(수많은 객석 중에 한 명이라는 뜻)가 되어 뒤에서 있는 힘껏 주접을 떠는 편이 내게는 맞는 것 같았다.

대전으로 이사를 하면서 더 이상 홍대는 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지역에서 작은 공연이 있다고 하면 일단 찜부터 하고 가급적 사인도 받아둔다. 언젠가 내 덕주에게 그래 주었을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도 덕주의 사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워낙 인기 있던 시절에 입덕을 해서 그런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아 안달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덕질 끝에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고 사인도 받았다!

역시 꿈꾸는 시간이 더 아름다운 법. 오래도록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려본 순간이었지만, 생각할수록 이불 킥만 날릴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덕주는 상상보다 훨씬 맑은 사람이었다. 눈도 맑고 피부도 맑고 아우라도 맑았다. 맑다는 말은 덕후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하는 표현이고, 덕후의 입장에서는 눈부셨다. 사람을 향해 눈부시다는 말을 쓰는 것은 그저 문학이나 영화에서나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눈부시다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이었다. 문제는 그런 덕주를 바라보던 나의 찌질함이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심각했다. 돌아오면서 두 시간이 넘게 가슴이 벌렁거리는 바람에 응급실에 가야 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별처럼,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게 내게는 적절한 덕질 방법인 것이다.

내가 바라는 음악은, 아니 인생은 '설레임'이어야 한다. 딱딱한 설레임을 조몰락조몰락해야 겨우 살강거리는 얼음 맛을 볼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한 번에 단물이 꼴까닥 목 뒤로 넘어가버리는 설레임은 설레임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속한 문화적 정체성과 도덕적 정체성이 가진 역사적 우연성을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제대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사람, 죽음, 도덕, 행복에 관한 문제에 대해 자기 것이 아닌 남이 만든 기준에 맞춰 사는 한, 사람은 자신의 생에 완전한 책임을 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3p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경험도 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시대를 살았지만, 친구랑 이불속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키득거린 추억만 있을 뿐 사연을 보내본 적은 없다. 누가 이 삭막한 인간에게 불씨를 댕겼는가.


사연 주제가 '나만의 비법'이었다. '갱년기를 이기는 나만의 비법'이라는 제목이 딱 떠올랐다. 얼른, 국카스텐을 만나 갱년기를 이기게 된 나만의 비법 이야기를 써서 보냈다. 남의 기준에 맞춰 살던 생활방식을 내던지고 덕질을 통해 자신의 행복,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 이야기였다.

사연이 소개되었고, 선물로 외식상품권을 받았다. 아이들과 남편은 더 하라고 나를 부추겼다. 상품권도 좋지만 내가 덕주의 노래를 라디오에 흐르게 했다는 게 보람찼다. 내 신청곡은 하현우의 솔로 앨범에 있는 '항가'라는 노래였는데, 음악대장의 '백만 송이 장미'를 들려주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로 시작하는, '먼(날숨)'만 듣고도 가슴이 저릿해서 일단 가슴에 한쪽 손을 올려놓아야 하고 나도 같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아득히 먼 백 년 동안의 고독 속으로 유체 이탈하게 하는 바로 그 곡, 말이다.


교양인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실로 여러 가지 가능한 길이 있다는 것에 대한 깊고도 폭넓은 이해를 가지는 사람입니다. 25p


최근, 아르헨티나 팬들을 팔로우하고 있다. 그들이 어찌나 열심히 덕질을 하면서 일상을 사는지 SNS에 올라오는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이 생긴다. 그들은 덕주의 노래를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스페인 언어를 쓰는 팬들에게 제공한다. 번역기로 영어로 바꾸고 다시 스페인어로 바꾸는 어려운 과정을 기꺼이 한다. 얼마 전에는 덕주의 굿즈나 앨범을 스페인 등 외국 팬들이 구입할 수 있게 배려해달라는 요청을 소속사에 하기도 했다.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면서 많은 국내 팬들이 감동을 받아 개인 굿즈를 선물하는 등 서로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가장 감동받은 것은 그중 한 분이 한글 연습을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한류로 인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우려고 노력한다는 기사를 보기는 했다. 하지만, 어두운 스탠드 아래 정자체로 한글을 또박또박 써놓은 공책을 사진으로 보면서, 그들이야말로 교양인이로구나 싶었다. 처음 덕주의 음악을 접하고 가사 하나라도 그 뜻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필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까지 하게 만드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한글까지 배우게 만드는 것일까. 실로 깊고도 넓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은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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