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교양은 유용성을 포함하지 않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이 그러하죠.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38p
나의 덕질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남편이었다. 입덕 초에는 집에서 영상만 보았다. 그러다 나도 직접 공연에 가보기로 마음먹고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침 춘천에서 하는 공연이 있었는데 혼자 갈 수는 있지만 공연이 끝나고 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낯선 환경에 나 혼자 두리번거릴 것도 겁났던 것 같다. 지금이야 솔플(솔로 플레이, 혼자 노는 것)이 최고라고 말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혼자 다닐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너무 막막했다.
남편은 흔히 볼 수 있는 지역 축제장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가서 술 한잔 하고 즐기다 오면 되지,라고 가볍게 여기고 길을 나섰다. 대낮에 도착했는데, 운동장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다닥다닥 누워있고 생각보다 작은 무대 앞에 몇 명이 소리치며 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던 우리에게는 별천지로 보였다. 하필 국카스텐은 마지막 순서였다.(알고 보니 유명하고 인기 있는 팀이 가장 늦게 나오는, 나만 몰랐던 당연한 불문율이 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끌고 남편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먹을 것을 구해오고(먹거리를 걸고 하는 온갖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걸 다 했나 보다.) 무대 펜스를 잡게 해 줬다. (무대 중앙이 아니라 사이드였지만 마냥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남편의 외조는 제주도까지 이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 말고 부부여행은 처음이라 우리는 살짝 들떴다. 하지만 오로지 덕질 여행을 상상하는 나와 제주도까지 왔으니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일념의 남편이 과연 싸우지 않고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이틀간 이어진 음악회는 온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도록 훌륭했다. 우리는 내내 음악에 푹 젖어있다가 왔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여행을 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둘이 하는 여행이 다른 사람들과 하는 여행보다 훨씬 편하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고서야 서로 익숙해진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부부여행(을 빙자한 덕질 여행)이 시작되었다. 덕질에 크게 유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
평창 올림픽을 기념하는 국민 합창단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평창에 가자고 했을 때 남편은, 물론 거기에 하현우가 나오기 때문이겠지? 라며 이제 놀라지도 않고 받아들였다.
리허설을 하는 내내 덕주를 실컷 볼 수 있었다. 나만 제보다 젯밥에만 관심을 가지는 줄 알았는데 국민합창단 대부분이 덕후들이었다. 우리를 향해 웃어주고 손도 흔들어주는 덕주를 보면서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고 그럴 때마다 앞뒤로 눈인사하기 바빴다. 내 옆에 앉았던 언니는 생각지도 못한 지방 덕친들을 만나는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날은 우리가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날이다. 합창을 하는 중간에 하현우가 같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덕주와 한무대에 서다니, 기념비적인 날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의 외조 중 가장 고마웠던 것은, 아이들에게 한 말이다.
하현우에게 고마워할 사람은 너희다. 엄마가 주말에 공연 가고 집에 없으니 너희가 편하게 놀 수 있지 않냐. 하현우가 아니었으면 엄마가 너희한테만 신경이 가있을 텐데, 얼마나 서로 힘들었겠냐.
진심으로 남편은 내가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동안 집을 비우는 게 미안해서 공연 날이면 특식을 준비해놓고 나오느라 낑낑댔는데, 그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런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내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으니 하현우에게 가장 고마워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인 셈이다.
아직까지는, 남편이 나의 덕질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니 많이 협조적이다. 고마우면서도 남편에게 나는, 덕분에 여행도 다니고 얼마나 좋으냐고 오히려 으스댄다.
팬 커뮤니티에 보면 가끔 남편이 허락해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여기서 허락이란, 심적 지지일 수도 있고, 육아의 협조일 수도 있다. 양쪽 다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겠다. 다만 말 그대로 '허락'의 의미는 아니길 바란다. 외조라는 표현으로 남편의 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허락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덕질은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다. 교양은, 문화는, 행복은, 그 안에 포함된 덕질은 허락의 범위가 아니다.
교양은 행복의 또 다른 차원을 열어줍니다. 시를 읽을 때, 그림을 바라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극대화됩니다. 말과 그림과 음률이 주는 명료한 힘은 우리가 문화라고 칭하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이 다층적으로 얽히고설킨 공간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 완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39-40p
덕질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 인식을 점검해주는 다층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강준만은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가 빠순이에 대해 배은망덕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빠순이들 덕분에 한류가 생겨나고 대중문화가 커나갔음에도 그 동력이 되어준 빠순이들에게는 여전히 눈을 흘기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던 내가 만일 미국이나 일본의 록밴드를 덕질한다면 그것은 과연 변절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논지와 그 핵심은 변함이 없이 유효하다. 그리고, 풍부한 문화의 경험이 우리의 인식을 더욱 명료하게 하며, 또 다른 차원을 열어준다.
예술을 경험하는 그 순간의 밀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교양과 교육을 혼동하지 않을 것이며, 교양을 넓혀가는 것이 '다가올 미래에 대한 현명한 대비'라는 어처구니없는 부르짖음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40p
아들이 물었다. 아빠가 여자 아이돌을 덕질해도 괜찮냐고.
나는 대답했다.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려면 먼저 메인 디시를 먹어야겠지.
뭔 소리야.
아들은 마음에서 나는 소리를 순화해서 내뱉었다.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