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교육, 학부모 활동 준비
부모 교육과 학부모 교육은 다르다.
부모들이 각 가정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사춘기 아이들의 특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등을 알려주는 것은 부모 교육이다. 학부모 교육은 보통 고교학점제나 대입제도 등 교육정책과 입시제도 등, 또는 입시 코칭을 학부모교육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학부모들의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활동을 돕고, 공동체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교육이 학부모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부모 활동이 민주적 생활방식을 경험하고 교육적 지향을 찾아나가는 일이라면 학부모 교육도 당연히 그런 태도와 철학, 교육관을 다져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누구나 학교자치를 말한다. 그런데 학교자치라고 하면 당연히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교사들의 교육자치라고 생각하고, 학부모들의 자치는 학생을 지원하는 일로 규정한다. 그게 학생행위주체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언제나 수혜자여야만 할까. 그게 과연 학생들을 위한 것이고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까.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효용성을 갖기를 바란다.
보통 강의할 때 우리 학부모들부터 민주적 실천과정을 통한 학부모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학생들에게 민주적 실천과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우리 모두에게, 또는 학부모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해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기 때문에 '나'를 건너뛰고 '내 아이'를 위해 함께 하자고 제안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학부모 교육은 우리 학부모들이 교육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미래를 고민하고, 우리 지역 우리 학교의 교육적 방향과 교육철학, 실천방법 등을 알아가는 교육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학부모들이 가장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그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독립적인 한 시민이 되려면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지금의 교육이 과연 우리 아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지 등등.
그런데 우리는 그 어떤 답도 듣지 못한 채 그저 눈앞에 주어진 시험과 입시에 대해서만 듣는다. 오늘 내 아이가 배움을 통해 얻어야 할 수업의 행복(!)은 보장받지 못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힌다.
진짜 우리 학부모들이 하고 있는 교육적 고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나눠보지 못하고 학교에서 주어지는 현안과 정책, 프로그램만 잔뜩 듣다가 끝난다.
나는 학부모들이 조금씩 우리의 진짜 교육적 고민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고 막막하다면 일단 주어지는 현안과 정책 프로그램에 대해 우리끼리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모여서 같이 검색도 해보고 서로 묻기도 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관련 분야의 경험 있는 누군가를 불러 물어보기도 하고(듣기만 하는 거 말고) 우리의 생각을 우리 스스로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갈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는 게 있어야 물어보는 거고, 자꾸 생각해야 더 궁금한 게 생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처럼 아주 원초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과 프로그램만 배울 게 아니라 그게 왜 현재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교육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과연 그 교육이 학생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고하게 하는지 등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딩교육 열풍처럼 한때 유행하다 끝나는 것들 뒤만 쫓아다니게 된다.
대단한 학부모교육시간을 따로 갖는 것도 좋지만, 학급 학부모회의 시간에 올라온 안건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 보기’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코딩에 대해 깊이 생각을 나누다 보면, 결국 코딩이라는 기술보다 디지털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먼저임을, 또는 그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감성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무엇에 대한 앎에서 나아가 학부모 활동을 기획해 볼 수 있다. (학원 등 자본에 의해 불안을 조장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 아직 많은 학부모들이 교육시민으로서의 학부모, 즉 학부모주체성을 확실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 학부모 활동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 그래서 더 많은 학부모들의 참여를 위해 재밌고 가볍고 관심을 끌만한 활동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동안 충분히 재밌고 가볍고 관심을 끌만한 활동을 많이 해왔지만 여전히 학부모의 관심이 부족하고 여전히 학부모들이 학교의 문턱이 높다면 달리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학부모 활동 같이 해보시죠?”
“아뇨, 저 바빠요.”
“얼마 전에 학생생활교육에 대한 안내문이 나왔던데, 같이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텐데요”
“아, 그건 궁금하네요.”
이런 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학부모들은 여전히 학부모 활동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 하지만 교육적 대화는 필요하다는 것 아닐까. 따라서 학부모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교육적 상상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거대담론을 이야기하자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작지만 생활에 밀접한 문제부터, 또는 지금 하고 있는 가볍고 재밌는 활동부터 조금 보완해 보자. 향수를 만든다면 왜 향수인지, 향수를 만들어 무엇을 할 것인지, 이런 배움의 과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는 거다. 향수를 만들어 장학금을 마련하기로 한다면 또 여전히 아이들을 수혜자로 만드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를 원하고 도움받기보다 도움 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로부터 교육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이해 없이 무작정 주기만 하다 보면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불균형하고 왜곡된 괴물로 크게 된다.
학교는 활발한 학부모 활동을 원한다. 회의나 교육도 좋지만, 학생 지원을 하거나 눈에 띄는 참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있는 활동을 좀 더 다르게 상상하는 것부터 해보자. 주어진 활동을 하던 방식대로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할지부터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그런 대화부터가 활동이다.
예전에 한 청소년센터에서 아이들과 봉사동아리를 꾸렸는데,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논의하는 것부터 봉사점수를 주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해야 할 봉사에 대해 논의했고 기상천외한 활동내용을 만들어냈다. 어떤 동아리는 논의만 몇 달 동안 했지만 담당자(학부모자원봉사자)는 절대 재촉하거나 억지로 결론으로 이끌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봉사를 하기 싫어 게으름을 피웠냐면 그 반대다. 인간은 누구나 다 효율적이고 싶고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논의가 길어진 것은 각자의 의견이 너무 달랐거나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도 주의할 것은 단 하나. 봉사단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말은 우리도 학부모활동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가 학부모라는 것, 우리 학부모는 아이들을 수혜자로 만드는 지원활동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공동체성을 높이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 교육이 더 나은 미래 사회를 위한 구성원으로 키우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라면 학부모회도 교육시민의 성장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럼 뭘 해야 하지? 마음껏 상상하다 보면 관성대로 학생을 위한 일만 떠오를 수 있고 자꾸만 엉뚱한 이야기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돌아오면 된다. 교육의 본질, 학부모의 본질로. 장학금을 마련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기만 할지라도 그런 논의 과정 자체가 학부모들에게는 교육적 상상으로서 의미 있지 않을까.
구글에서는 업무지시가 없다고 한다. 오로지 회사의 비전과 올해 목표만 주어진다. 직원들은 목표 속에서 문제와 과제를 발견해 내고 골똘히 고민을 하고 회사에 제안을 해서 협업을 통해 결과를 낸다. 학생행위주체성이 바로 이것 아닌가.
우리도 ‘교육의(또는 학교의) 비전과 올해의 교육목표(또는 방향성)'를 보고 그 속에서 골똘히 고민을 하고 학교에 제안을 하고 협력을 통해 좋은 실천사례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은가. 왜 우리 학부모는 그런 방식으로 자치활동을 하면 안 되는가. why not?
덧. 모니터링은 중요한 시민활동이다. 당연히 모니터링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니터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정한 방향성에 맞게 제대로 가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며,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모니터링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교육이 우리가 정말 바라는 교육인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가 정말 이대로 가도 좋은지를 내 아이가 겪는 직접적이고도 당사자적인, 때로는 사소한 문제로부터 확장해갈 수 있는 힘을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