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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03. 2024

쫄지 마, 쇠채아재비

기찻길 옆 산책로를 걸었다. 방음벽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에 맞춰 나간다. 길을 따라 대나무, 화살나무, 남천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데 가끔 이름 모를 풀들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경우가 있다. 그 풀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에도 그런 풀을 하나 발견했다. 강아지풀과 씀바귀꽃, 개망초 등이 흐드러진 사이로 줄기 하나가 길게 뻗어있었다. 끝에는 곧 꽃을 피울 듯한 꽃망울이 달려있었는데 그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서 위치를 잘 기억해 두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확인해 봤더니 여전히 꽃망울 그대로다. 원래 이러다 마는 풀인가 싶어 살짝 실망했다.

그리고 오늘, 그 풀을 찾아볼 요량으로 걸어가다 우뚝 멈춰서 버렸다. 세상에, 민들레꽃씨보다 훨씬 큰 어른 주먹만 한 풀씨가 온몸을 흔들고 있었다. 간 비눗방울인 줄 알았다.

이 둥글둥글하고 포실포실하고 놀라운 풀씨는 뭘까? 왜 꽃은 보지 못하고 풀씨가 된 후에야 눈에 띄었을까. 근처를 돌아봐도 그 꽃망울이라 할만한 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이름을 찾아보니, 쇠채아재비. 쇠채라는 토종풀과 비슷해서 아재비라는 어미를 붙인 거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비슷한 것을 지칭할 때 ‘-사촌’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아저씨의 낮춤말이라는 아재비를 붙인 걸 보면 사람이 아니라 풀이라 낮춤말을 붙인 건가. 아니, 그보다 아재비는 가까운 사람을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삼촌을 아재라고 불렀던 것처럼. 그때는 사투리인 줄 알고 고쳐 불렀다.


‘오늘의 꽃’은 너로구나. 요리보고 조리보고 한참을 들여다보며 흐무뭇하게 웃었다. 마치 와인 잔을 모아 쥔 건 웨이터 손가락 같다. 짜라랑, 소리라도 날 것처럼 한들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황홀하기까지 하다. 자연의 신비,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와 같다는 말들이 절절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풀꽃 하나에 너무 과하다고? 아니, 전혀 과하지 않다. 여태 모르고 지난 나의 무지가 애석할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발견해 나갈 아름다움이 수없이 많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번진다.  

   

그나저나 이걸 도대체 어찌 그려야 하나. 내가 과연 이런 짓(아름다운 꽃을 그리는 일)을 해도 되나. 바짝 았다가 얼른 어깨를 편다. 내가 누구냐.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재밌어서 하는 거야’라는 글귀를 책상 앞에 써붙여 놓은 용사(‘용감할 용’ 자이다)가 아니냐.

쫄지 마. 그냥 그리는 거야.

훅 불면 날아갈 쇠채아재비 풀씨는 그렇게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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