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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07. 2024

쓰지 않을 수 없는, 닭의장풀

9살 때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나는 꼭 9살과 4학년의 일을 헷갈리곤 한다), 소설이라는 걸 써본 적이 있다. 그 소설의 제목이 ‘패랭이 꽃잎 위에 떨어진 눈물’이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막연히 사랑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때는 사랑 이야기 말고는 하나도 몰랐으니까.


아무튼 그때 나는 ‘닭의장풀’을 패랭이꽃으로 착각했다. 왜 비슷하지도 않은 꽃을 헷갈렸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그때만 해도 식물도감조차 흔하지 않던 시절이니까 누군가 잘못 알려줬던 거겠지.

언젠가 이 꽃이 패랭이가 아니라 닭의장풀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엄청 허탈했다. 닭의장풀 이파리로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이미지를 떠올렸던 건데 패랭이는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으니.


그보다 더 큰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때도 나의 작은 언니, #우리라도인류애를나눠야지 에 썼던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멋지다고 환호해 주었던 언니는 그 소설에 대해서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때만이 아니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수시로 그 일을 언급하며 나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나만 안다. 나만 아는 부끄러움이었다.


그 뒤로 나는 가급적 글 쓰는 일과는 멀어지려

애썼다. 닭의장풀은 너무 흔해서 여름이면 잊지 않고 그 일을 떠올리게 했고 그때마다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까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고 나서야 부끄러움조차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다. 애틋한 나의 닭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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