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에 잠이 깼다. 파도소리처럼 쏴아 쏴아 나뭇잎을 흔든다. 평소에는 환경 운운하며 아파트라는 거대한 콘크리트를 못마땅해하다가 오늘 같은 날은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한 내 집이라 안심한다. 간사하게도. 여기저기 부러지고 떨어진 나뭇가지를 보면서 지나친 가지치기에 대해서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나. 인간의 자기중심적 안전감각이 아닐 수 없다.
접시꽃은 무궁화만큼이나 벌레가 많이 꼬이는 꽃이다. 그래서 울밑에 심었던 거다. 집안으로 벌레가 꼬이지 않게 하려고. 마을 입구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고, 밭 중간중간에 키 작은 나무를 심고, 울타리 대신 무궁화를 심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이런 지혜를 배울 수는 없을까. 아마도 선조들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지혜들이 있었을 거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아서 사라져 가게 된 것일 수도.
바람에 쓰러지려는 접시꽃을 누군가가 끈으로 묶어 놓았다. 가끔 같이 안전하게 살자고 나서는 인간들도 있어 감사하다. 접시꽃은 옆으로 기우뚱해졌지만, 꽃잎도 살짝 오므렸지만, 또 아래쪽 이파리는 벌레가 슬어 구멍이 숭숭하지만 그런대로 개의치 않고 내일을 맞이한다. 그렇게 서서히 스러져가며 씨앗을 검게 익힌다. 원래 그런 거라는 듯이.
우리에게도 끈이 있었으면. 스러지더라도 내일의 태양을 쬘 수 있게 지지대가 있었으면. 안전하게 같이 살자는 인간들이 더 많아져야 할 텐데. 생각보다 훨씬 길어진 중년을 살다 보니 별 거 아닌 풍경도 예사롭게 보아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울 남편은 여태 접시꽃과 무궁화를 헷갈려한다. 그 정도면 박보검과 김수현을 헷갈려하는 수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