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 유현미 님의 <마음은 파도친다>를 보면서 내가 엄청 잘 그리려고 애썼구나 반성이 되었다. 세밀화를 그릴 게 아닌 바에야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잘 담는 게 중요할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를 펴고 앉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한참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나는 느낌도 중요하지만 자세히 돌아보지 않았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것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기기묘묘한 모양새와 색깔 등을 발견한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어제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온전히, 그 맥락까지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성장배경을 알고 성격을 알고 또 살아온 삶의 역정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객관적으로 자신의 결핍으로 인한 단점과 결점을 말할 때는 오히려 내가 속상하기까지 했다. 그 결핍조차 너다움에 속하니 마음껏 주관적으로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성숙한 그녀는 그러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보통은 반대인 경우가 많은데,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들 때 그렇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 대화의 시간이 얼마나 자유롭던지. 안다는 건 그런 거다.
나는 그리는 대상과 그렇게 아는 사이가 되고 싶다. 이제 막 만난 사이라 아직은 낯설고 모르는 것투성이다. 아무리 ‘너’를 그린다고 해도 ‘너’ 자체이기보다는 ‘나’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의 느낌에 중심을 두는 것과 ‘너’에게 중심을 두는 것은 다를 것이다.
이번 그림 시리즈는 나를 드러내기보다 ‘너’에 방점을 두고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갖고 놀았고, 한 줌이라도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강아지풀도 낯설기는 마찬가지. ‘너’를 알기 위해, 그리기 위해 허리 숙여 들여다보기는 처음이니까.
앗, 그런데 꽃말이 동심과 노여움이란다. 동심은 이해가 가지만 노여움은 뭘까? 그것도 천천히 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