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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26. 2024

너덜너덜해도, 여주 꽃

한 달 만에 사람이 물을 건널 수 있게 되다니, 놀랍고도 놀랍다. 수 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수영강좌를 받으며 그 가능성을 증명했고 이제는 당연하게 정착된 강습법(과 더불어 기간)에 대해 이제 와서 놀라워하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게도 적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나는 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고 엄두도 내지 않으며 살았다. 그런데 나도 해냈다. 자유형으로 25미터 완주! (아이고, 우스워라 ㅋㅋㅋ )     

근데 나는 왜 이토록이나 자신을 못 믿는 걸까. 돌이켜보면 어려서 체력장을 만점 받았고, 그 과정에서 윗몸일으키기와 매달리기 등을 1에서 만점까지 차근차근 늘려갔던 경험도 있는데. 체육 실기시험도 배구 토스하기, 핸드볼 던지기 등등을 결국은 다 해낸 기억이 몸에 새겨있는데. 그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거니까,라고 미리 핑계를 만들어놓았던 것 같다.

어쨌든 못하는 걸 하게 될 때의 기쁨은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되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만족감을 준다. 단, 남과 비교만 하지 않는다면.

그림을 그릴 때도 그랬다. 똥손이라며, 하나도 못 그린다며 왜 하필 그림을 선택했어?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선택한 게 아니고, 그냥 그림이 내 앞에 있었다고. 평생 내가 잘하는 건 무얼까 고심해 봤자 다 거기서 거기, 49대 51인 걸 뻔히 알기 때문에 주어진 걸 그냥 하는 거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딱히 없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못하는 것이어서, 그림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못하는 거였으니 만족스럽지 않은 게 당연했고, 결과물과 상관없이 매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라도 해내는 게 스스로 기특했고 매번 놀라워하며 신이 났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보통 사람들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지만 인간의 능력치라는 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잘한다고 해봤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정도이고, 이미 평균 이상이라면 천재가 아닌 이상 더 나아지기도 쉽지 않다. 노오오력해도 타고난 사람을 넘어서지 못하는 서글픔을 다들 알지 않는가. 더구나 잘하는 건 스스로도 성취기준이 높아서 어지간해서는 만족스럽지가 않다.       

기준이 낮으면 별 거 아닌 것에도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가성비 짱!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단 한 가지, 남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바로 그게 잘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여주 꽃잎이 너덜너덜하다. 너덜너덜해도 꽃은 꽃이다. 겨우겨우 해도 수영은 수영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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