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선수범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책임감이 강하거나 착해서가 아니라 누가 할지 눈치보거나 누군가와 같이 하는 것보다 혼자 해버리는 게 제일 속 편하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십중팔구 서로 기대가 달라서 생기는 갈등이다. 그런 갈등에 시달리느니 얼른 내가 나서서 해버리는 게 나로서는 이득이다. 결국 관계를 맺고 조율하는 건 제대로 안 한 셈이다.
얼마 전 친구와 아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는데, 친구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뭐든지 장단점은 있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일을 택하는 걸 권한다고. 특히 스트레스를 잘 받는 민감한 성격이라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재미난 일을 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에서 ‘자전거 조업’이라는 표현을 읽었다. ‘자기가 페달을 밟는 만큼만 앞으로 가는 것.’ 회사를 키우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야 할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각자가 자신의 일을 자기 페이스대로 해나가도록 회사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다. 거대한 조직 안에서 밤낮없이 일을 하는데도 자신이 하는 일이 불쉿 잡이 아닌가 매일 의심하는 자기 효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대에 자전거 조업이라니 꿈만 같다. 그럼에도 그것만이 진짜 대안이라고 느낀다. 자전거로 달리니 엔진이 달린 기계보다는 주변의 영향도 덜 받겠지.
에너지가 부쩍 줄어든 요즘, 쓰고 그리는 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전히 관계 맺는 일을 제대로 안 하지만, 가끔 넌지시 일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있다. 그런 이들 덕에 핸들을 조금씩 꺾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밟는 만큼만 페달이 굴러가니 어지럽지는 않다. 새로운 일은 새로운 길과 같아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두려움이 불쑥 다가서면, 방송인 최화정의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린다. 허리를 쫙 펴고 입꼬리를 올리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일단 허리를 쫙 펴본다.